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기업은 삼순이를 싫어해?

심상정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최근 흥미 있는 설문조사 결과가 눈길을 끌었다. 한여름 밤을 더욱 뜨겁게 달궜던 드라마 주인공 ‘김삼순’에 대해 기업 인사담당자들은 ‘별로’라는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채용불가’ 이유로 ‘눈치가 없고 성격이 직무에 맞지 않을 것 같아서’를 꼽았다고 한다. 상사를 비롯해 누구에게나 할 말은 하는 삼순이의 솔직함은 ‘눈치 없는’ 행동으로, 내세울 배경도 없는 그녀의 당당함은 ‘직무에 맞지 않는 성격’으로 본 것일까. 기업이 원하는 것은 상사 기분 정도는 알아서 맞출 줄 아는 ‘눈치’ 있고 그 어떤 부당함도 참고 인내할 줄 아는 ‘성격’ 좋은 여성일 테니 ‘나이 많고 뚱뚱하고 대학도 안 나온 거침없는 성격’의 소유자인 삼순이가 입맛에 안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탓에 삼순이의 일에 대한 자신감과 프로근성 따위는 여기에 가려 관심거리조차 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청자들이 삼순이에게 열광한 것은 바로 그 솔직함과 자신감 때문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가질 수 있는 콤플렉스를 골고루 갖춘 삼순이가 당당하게 자기 삶을 리드해가는 모습은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대다수 여성들에게 ‘대리만족’을 느끼게 해줬다. 이는 현실을 살아가는 또 다른 삼순이들의 피곤함을 말해준다. 여성이 고졸 학력과 서른이라는 나이로 기업의 문턱을 넘어서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 다행히 입사했다 하더라도 핵심부서에 배치될 가능성은 매우 낮고 특정 직위 이상 승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함께 일하는 남자들 역시 삼순이를 능력 있는 동료로 인정하기보다는 ‘드세고 뚱뚱한 노처녀’로만 바라보기 일쑤다. 기업 내에서 눈에 보이는 여성차별은 줄어들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벽’은 여전한 것이다. 최근 호주제 폐지, 여성 종중원 자격인정 판결 등이 잇따르자 일각에서는 “여자들 목소리가 너무 커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솔직하게 말하면 그동안 아예 안 들렸던 목소리가 이제 겨우 조금씩 들리기 시작한 것뿐이다. 세계화를 부르짖으면서 유독 여성에 대한 평가만은 조선시대 기준을 들이대니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국제사회 기준으로 볼 때 한국 여성의 지위는 여전히 ‘최하위권’에 속한다. 유엔개발계획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여성권한척도는 68위로 나타났으며 세계경제포럼 보고에서도 양성평등지수가 58개국 중 54위에 그치고 있다. 우리나라 여성들은 이제 막 말문이 트이기 시작했다. 앞으로 더 많은 삼순이들이 각 분야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며 당당하게 살아가게 되기를 꿈꿔본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