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전염성 탐욕

날개 없는 추락이라고 했던가. 미국의 CEO(최고경영자)들을 두고 요근래 하는 말이다. 얼마 전 USA투데이.CNN 방송.갤럽이 합동으로 미국인의 직업별 신뢰도를 조사한 적이 있다. 결과는 CEO가 23% 지지로 바닥이었다.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은 예상외로 교사 84%였다. 그 다음은 소규모 기업운영자 75%, 군장교 73%, 검찰관 71%, 청소년 스포츠 감독 68%, 개신교 목사와 의사 66%, 회계사 51% 순이다. 반면에 신뢰도가 떨어지는 쪽은 성추문 파문으로 가톨릭 신부 45%, 기자와 방송인 38%, 정부관리 26%, 변호사를 비롯한 법조인 25%, 그리고 CEO 23%이다. 이 같은 조사를 한국에서 했더라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CEO가 바닥이었을까. 미국의 권위 있는 일간지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는 근래 CEO들이 자진해서 연봉과 스톡옵션을 삭감하거나 타의로 깎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장기호황과 IT산업 붐으로 CEO들의 보수가 '달리는 기관차'처럼 멈출 줄 몰랐는데 이제는 오히려 연봉.성과급.스톡옵션 등이 대폭 삭감되는 방향이라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회계를 조작하는 CEO에게 엄중한 형벌을 과하는 법안이 미국 상원과 하원에서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됐다. 증권거래위원회에 제출하는 재무보고서가 허위로 작성될 경우 임원에게 20년의 징역형과 500만 달러의 벌금을 물리도록 했다. 20년 징역형이면 극악한 사기꾼이나 범죄자에게 적용될 수 있는 형벌수준이다. 어떤 기자는 미국 CEO들의 좋은 세월이 다 갔다고 말했다. 천당에서 지옥으로 떨어졌다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CEO 같은 인간"이란 말이 요즘 미국에서 제일 심한 욕이라는 농담이 나돌 정도라고 한다. 존경과 부러움을 한몸에 받으며 호사하던 이들이 어쩌다 이런 처지가 됐는가. 잇따라 터져 나온 회계부정의 충격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말해 주는 것이다. 그것은 CEO들의 사리사욕이 빚은 자업자득이라는 얘기들이다. 앨런 그리스펀 미국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CEO들의 개인적인 탐욕 때문이므로 탐욕을 버리라는 충고를 했다. 그는 스톡옵션이 기업가들의 건전한 판단을 흐리게 한다면서 "전염성 탐욕"이라는 말을 했다. '전염성 탐욕'이야말로 최근의 상황을 아주 절묘하게 함축하는 신조어라는 평이다. 미국의 영향권 아래에 있는 한국의 CEO들은 괜찮은가. 지금 재계에서는 남의 나라 일이 아니고, '미국 닮기'에 급급하다가 크게 다친다는 소리가 높다. 김용원(도서출판 삶과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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