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회 월드컵 경기의 공식기록으로 한국은 세계 4위다. 저 6월의 열기와 광풍에 비추어 보면 당연한 결과처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곧 이어 발표한 FIFA(국제축구연맹)의 랭킹은 22위였다. 이 두 기록은 몇 가지 흥미로운 문제들을 제기한다.
우선 사실과 진실의 낙차이다. 한국이 세계 4위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8년간의 성적(이번 월드컵까지 포함)을 토대로 한 랭킹은 이 보다 18위나 아랫 단계이다.
그것은 진실이다. 공교로운 결과이지만 이 수준은 '6월의 광풍' 이전과 비교해 18위의 대약진과 똑같은 수치다.
자존망대라 할 수는 없지만 김이 빠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스포츠 애국주의의 열풍 이후 냉정과 이성을 찾으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아직도 그런 분위기가 존재하지만 '붉은 악마'와 '대∼한민국'의 함성이 뒤덮은 시기에 비판은 금물이다.
인터넷에 심판 판정이라든가 '텃세'를 이야기 했다가 집중포화의 표적이 되었다. 한국의 연승과 한 단계씩 높아간 목표에 '초를 치지 말라'는 집중적 반응이다. 그러나 이제는 냉정하게 우리의 수준을 확인해 둘 필요가 있다.
환희와 흥분의 시간이 지난 지금 두 가지 집단반응이 흐르고 있다. 하나는 포만감이며 다른 하나는 다시 그런 날이 있을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다. 포만감 뒤에 오는 것은 강자의 게으름이다.
프랑스와 아르헨티나가 초반 탈락의 쓴잔을 마신 것은 '강자'의 오만과 게으름이 초래한 비극적 결과라고 본다.
'월드컵 4강'의 훈장에 취해 '자존 망대'할 때 한국이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워낙 대약진의 기록이라 성취 이후 목표 설정의 의구심은 허탈감과 이완 심리로 변할 개연성이 있다.
4년후 독일 월드컵에서 다시 4강이 되고 준결승에 진출하고 '내친김에 결승까지'라는 목표와 실현의 거리감을 FIFA 랭킹이 일깨워 준다.
그러나 회의할 필요는 없다. 불과 한 달만에 18단계를 몰라간 기록은 '벼락공부'의 성적이 아니다. 8년간의 기록을 과학적으로 실사하여 검증한 평가라고 한다. 이제 새로운 목표는 '허명'이 아닌 진짜 '실력 세계'의 강자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은 4년이라는 '고난의 시간'을 의미한다.
흥분의 여파인지 '경제도 4강'하는 소리가 들린다. 용기를 내자는 뜻이겠지만 GNP와 수출입 기록이 총체적 우리 경제의 실력과 수준은 아니다. 초치는 말 같지만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했다. 새로운 분발의 단초는 여기부터 찾을 일이다.
손광식(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