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3월21일] 존 로

[오늘의 경제소사/3월21일] 존 로 권홍우 편집위원 프랑스엔 ‘은행(bank)’이 없다. ‘쏘시에테(회사)’나 ‘그레디(신용)’가 은행의 이름으로 대신 쓰인다. ‘방크’로 불리는 곳은 십중팔구 외국계다. 왜 그럴까. 200여년 전의 쓰라린 기억 때문이다. 방크를 불신의 동의어로 만든 장본인은 존 로(John Law). 스코틀랜드의 전당포 겸 금세공업자 집안에서 태어난 덕에 일찌감치 금융실무를 접했던 그는 23살 때 애정문제로 발생한 결투에서 상대를 죽여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런던 감옥을 탈옥, 유럽대륙으로 피신한 후 금융중심지인 암스테르담에서 화폐론을 익혔다. 슘페터는 훗날 그를 ‘역사상 최고의 화폐이론가’라고 치켜세웠다. 출발은 좋지않았다. 스코틀랜드와 토리노공국에 개혁안을 건의했지만 번번이 퇴짜. 단 한 곳, 프랑스는 ‘인도보다 더 큰 선물을 안기겠다’는 말에 넘어갔다. 1716년 프랑스 최초의 은행, 방크제너랄 설립 허가를 얻은 로는 은행권을 찍어 경제에 온기를 불어넣었다. 로 시스템의 결정판은 미시시피회사 설립. 프랑스령 미국 식민지 건설을 독점할 이 회사의 주가는 1718년 액면가 300리브르로 시작해 1719년 2만리브르까지 치솟았다. 고비마다 중국회사ㆍ서인도회사 설립 같은 재료도 나왔다. 모두가 흥청거리고 ‘백만장자’라는 말도 처음 생겨났다. 외국인 죄수 출신인 그는 재무총감 자리와 공작 작위까지 따냈다. 문제는 미국 식민지가 미개척지에 불과했다는 점. 남발된 지폐와 투기로 인한 거품은 1720년 일시에 꺼졌다. 프랑스도 거덜났다. 베니스로 망명한 그는 도박장에서 확률을 계산해 푼돈을 따며 여생을 보냈다. 1729년 3월21일 58세로 몰(歿). ‘사기꾼과 예언자 기질이 잘 배합된 인물’(마르크스)이라는 로의 이론은 오늘날 화폐금융제도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입력시간 : 2006/03/20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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