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법원 판결이 세상을 바꾼다

올 한해 관심끈 판결 분석'제도'가 '사회'를 규율, 통제하지만 그때그때 사회의 흐름을 담아내는 데는 시차가 있게 마련이다. 제도의 대표격인 '법'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법이 정한 테두리 내에서 최대한 현실에 근접한 해석을 내릴 수는 있다. 2001년은 이런 점에서 주목받는 한해였다. 올 한해 법원은 사회 흐름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판결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사회변화에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더욱이 굵직굵직한 경제 판결들은 개인ㆍ기업 등 개별 경제주체들은 물론 경제흐름의 방향타로 기능했다. ◆ 고객과 주주이익 우선 대우채권 환매연기 조치에 대한 적법 유무와 과다 편입에 따른 배상 책임은 올 한해 내내 '뜨거운 감자'였다. 최종 판결이 어떠한 방향으로 내려질지 단언할 수는 없지만 관련 재판 결과들은 어떤 이유로도 고객과 주주의 이익보호에 위배되는 금융기관들의 결정은 사법 당국이 용납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분명히 했다. 이밖에 주식 일임매매를 약정했더라도 작전 피해 때는 증권사가 배상해야 한다거나 소액주주가 불참한 주주총회에서 스톡옵션 결의는 무효라는 판결 등도 주목을 끌었다. 지난 27일 수원지법이 삼성전자 임원들의 경영상의 책임을 물어 900억원의 배상책임을 지우는 판결도 같은 맥락이다. 최종심을 기다려야 하지만 이를 계기로 지난 반세기 한국 자본주의의 경제환경과 기업경영 풍토를 되돌아보고 개선대책을 다루는 논의의 출발점이 될 것은 분명하다. ◆ 경제사범 엄벌 11일 동방ㆍ대신금고의 2,000억원대 불법대출 및 횡령 사건으로 기소된 정현준ㆍ이경자씨는 각각 징역 9년ㆍ6년의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았다. 2,000억원대 불법대출 및 주가조작의 진승현씨에 대해서는 1심에서 징역 7년이 선고됐다. 이는 경제 사범들은 집행유예 판결을 받고는 했던 과거의 양형 기준에 비춰볼 때 크게 달라진 현실을 보여준다. 또 법원은 주가조작 사범들에 대해 검찰 구형량보다 중형을 선고하거나 이례적인 고액의 벌금형 및 벌금형은 처벌효과가 없다며 법정구속을 하기도 했다. ◆ 부실기업 처리는 신속히 서울지법 파산부는 관리 중이던 법정관리ㆍ화의 기업에 대한 처리로 주목받았다. 회생이 가능한 기업에는 신속한 법정관리 인가 및 종결 결정을, 영업실적이 저조하고 회생가능성이 낮은 기업에 대해서는 엄격한 퇴출 결정을 내렸다. 5월에는 리비아와 외교문제로 까지 비화될 뻔했던 동아건설 파산에 대해 '청산가치가 존속가치보다 높다'며 원칙대로 파산결정을 내렸다. 11월에는 부실기업 인수를 위한 M&A 준칙을 개정, 기업구조조정전문회사(CRC)들의 무분별한 M&A에 제동을 걸기도 했다. ◆ 저작권 분쟁 지적재산권 및 상표권 분쟁과 관련, 새로운 판결들이 나와 주목을 끌었다. 특히 8월에는 인터넷 상의 지적재산권 피해에 대해 처음으로 손해배상을 인정하는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디지털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불법으로 파일을 방치하거나 무단 복사하는 현실에 제동을 걸었다는 평가다. 특히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재판이 진행 중인 '소리바다' 사건은 저작권 판례에 새로운 기준을 남길 전망이다. ◆ 산재범위 등 확대 행정법원에서는 산재인정 범위를 넓게 해석하는 판결들이 잇따라 나왔다. 과중한 업무와 이로 인한 스트레스의 연관성, 만성피로 등을 산재로 인정하는 판결 등이 나왔다. 1월에는 일시적인 실업상태에 있는 구직자도 노조 가입이 가능하다는 판결이 나와 실업자 노조설립 근거를 제시했다. 또 공익사업장에 대한 직권중재는 노동자의 단체행동권을 박탈하고 단체교섭권을 무력화한다며 직권으로 위헌심판을 제청하는 등 법원이 적극적인 법 해석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김정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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