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송현칼럼] 투자없는 성장은 없다

지금 우리나라는 극도의 이념적 분열에 시달리고 있다. 다행히 지금은 과학자의 양심 문제로 정리가 됐지만 황우석 교수 사건마저도 초반에는 좌우 이념 대립의 양상을 띠었던 것이 그 좋은 증거이다. 경제 문제에 오면 이념 대립은 더 심하다. 과거 경제성장에 관한 평가부터 시작해서 과거 경제체제에 대한 이해, 당장 필요한 정책들,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에 있어 엄청난 의견 대립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런 대립 속에서도 좌우를 막론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하는 명제가 있다. 이는 우리나라가 과거에 기술 혁신은 거의 없이 투자를 통해 성장을 이뤘으며 이 모델은 지금과 같은 “지식기반 경제” 시대에 맞지 않는 모델이기 때문에 “혁신 주도형” 경제로 체제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이 명제에 따르면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의 투자가 급격히 하락한 것도 별로 걱정할 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기술 혁신이지 투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과거에 투자는 많이 했는지 몰라도 그 생산성이 낮았고, 따라서 투자를 덜하더라도 기술 발전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면 과거만큼 성장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그 근저에 깔려 있는 이론부터 문제가 있다. 이 주장의 바탕이 되는 신고전파식 경제성장 이론의 기본 가정은 노동ㆍ자본 등과 같은 생산 요소 투입의 증가와 기술 발전(소위 ‘요소 생산성 향상’)을 분리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는 현실성이 없는 것이다. 현대 자본주의에서 대부분의 기술은 기계나 여타 설비에 체화돼 있고 따라서 투자 없이 일어날 수 있는 기술 발전은 지극히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설사 요소 투입 증대와 기술 발전을 분리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이뤄진 실증연구들만 보더라도 한국은 투자만을 통해 성장한 나라가 아니라 국제적 기준으로 봐서 빠른 기술 발전을 이룬 나라이다. 아직 경제가 전반적으로 선진화됐다고 할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는 상당한 자체기술을 가지고 있다. 최근 미국 특허국의 통계를 보면 한국은 정보기술(IT) 부문에 지나치게 편중돼 있기는 하지만 특허 취득 수가 세계 4~6위 안에 드는 나라인 것이다. 또 세계에서 몇 안되는 자체 자동차 엔진을 개발한 나라이기도 하다. 물론 미국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이 지난 90년대 중반 그렇지 않다는 통계자료를 인용해 ‘동아시아 기적의 종언’을 예언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그가 인용한 자료들은 사실은 학계에서는 ‘소수 의견’이다.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한국이 상대적으로 기술발전이 빨랐던 나라라는 결론을 내린다. 특히 크루그만이 인용한 한 논문에 의하면 콩고ㆍ방글라데시ㆍ이집트 등이 우리나라보다도 요소생산성 향상 (기술 발전) 속도가 높았는데 그렇다면 이 나라들이 우리나라보다 더 ‘질 좋은’ 경제발전을 했다는 결론을 내려야 하는가. 수긍할 수 없는 이야기이다. 물론 위에서 한 이야기들이 설비투자가 없으면 절대로 기술 발전과 경제성장이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은 아니다. 같은 공장과 기계를 가지고도 생산방식을 개선하거나 노동자 훈련의 강화를 통해 어느 정도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신기술이 생산성 향상, 그리고 나아가서 경제성장으로 이어지려면 기계나 여타 설비에 체화돼야 한다. 포스코가 설립 초기부터 외국의 유수 철강 업체들과 경쟁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보조금ㆍ보호관세 등 정부의 막강한 지원 덕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신일본제철이 개발만 해놓고 기존 용광로의 수명이 다하지 않아 실제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던 기술을 수입해서 과감한 투자를 통해 새로운 용광로에 적용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80년대 중반 이후 외환위기 때까지 국내총생산(GDP) 대비 13~14%대에 이르렀던 설비투자는 외환위기의 여파로 98년에는 8.4%까지 떨어졌다가 2000년 12.8%로 회복하는가 싶더니 이후 11%(2001년), 10.4%(2002년), 9.6%(2003년), 9.2%(2004년), 9.0%(2005년 9월까지)로 계속 떨어지고 있다. 과거에 비해 설비투자가 30% 이상 낮아졌고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약간의 설비투자 감소라면 설비에 체화되지 않은 기술 혁신으로 보상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대규모의 투자 감소를 그러한 기술혁신을 통해 보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 이상 “이제는 투자가 필요 없는 지식기반 경제 시대”라는 편리한 명제에 기대 우리의 투자 부진 문제를 안이하게 봐서는 안된다. 투자 없는 성장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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