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들이 최근 들어 무서운 기세로 주식을 사들이는 반면 연기금은 소극적 매수로 일관하고 있다. 국내 기관투자가 가운데 주식 매입 여력을 갖춘 곳은 사실상 연기금뿐이다. 투신권의 경우 주식형펀드 환매가 끊이지 않아 주식을 처분할 수 밖에 없는 형편이다.
반면 연기금의 경우 지난해 주식을 많이 팔았기 때문에 상당한 매입 여력을 갖추고 있고, 올해 초 주식 매수 규모를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연기금의 실제 행보는 딴판이다. 올들어 순매수 기조를 지키고 있지만 절대적인 매수 규모는 그야말로 미미한 수준이다. 증권가에서는 연기금이 매수 타이밍을 놓쳤다고 지적한다. 코스피지수가 이미 1,700포인트선을 훌쩍 뛰어넘었기 때문에 추격 매수에 나서기도 부담스러운 입장이다. 증권사 관계자들은 증시가 조정 양상을 보여야 비로소 연기금이 주식 매수에 나설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연기금, 실적주 중심으로 소규모 매수=올 들어 연기금의 주식 순매수 규모는 ▦1월 3,880억원 ▦2월 4,476억원 ▦3월 4,218억원 등으로 매월 4,000억원 안팎 수준을 유지했다. 외국인이 최근 하루에 3,000억~4,000억원의 주식을 순매수하는 것과 비교하면 턱없이 적은 수준이다. 그나마 연기금의 하루 순매수 규모가 1,000억원을 넘긴 것도 1월(18일)과 2월(5일)에는 한번씩 있었지만 3월에는 한 번도 없었다. 4월 들어서는 오히려 32억원 어치를 순매도했다. 연기금이 올 1분기중 가장 많이 사들인 업종은 전기전자로 순매수 규모가 2,590억원에 달했다. 이 기간 동안 금융업(2,474억원), 운수장비(2,451억원) 등에 대한 매수는 확대한 반면 서비스업(-1,146억원), 통신업(-209억원) 등의 경우 매도에 치중했다. 종목별로는 현대중공업(1,121억원), 삼성전기(1,082억원), 삼성전자(1,046억원) 등 실적주를 주로 매수한 반면 LG전자(920억원), KT(610억원), 현대제철(556억원) 등은 팔았다. ◇당분간 적게 꾸준히 산다=연기금들은 저평가된 주식을 중심으로 규모는 작지만 꾸준히 매수하는 전략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김선정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장은 "외국인 때문에 주가가 너무 뛰다 보니 (주식을 많이 사기에는) 참 어려운 수준까지 왔다"고 말했다. 이윤규 사학연금기금운용본부 자금운용관리단장도 "외국인은 한국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비중을 늘리는 것이지만, 기관은 오히려 매도 중"이라며 "당분간 1,700~1800선에 박스권이 형성될 것 같고, 당초 계획에 따라 조금씩이나마 투자비중을 늘려갈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김병연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경험적으로 MSCI한국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이 8~9배일 때 연기금 순매수가 집중됐다"며 "현재 PER이 10배이지만 아직 비싼 수준은 아니고, 또 국민연금이 12조원의 매수여력이 있는 만큼 조정기만 되면 언제라도 들어올 수 있다"고 말했다. 김동하 교보증권 연구원은 "펀더멘털이 아닌 수급으로 움직이는 상황에서 주가가 높은 수준에 들어오기에는 가격부담이 클 것"이라며 "미국과 국내경기가 바닥을 다진 것이 지표로 확인되는 4~5월부터는 연기금도 매수확대를 검토해 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