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벤처 새 패러다임 열자]죽어야 산다

"벤처는 흥망 다반사" 부실땐 청산 결단을'죽어야 산다.' 벤처열풍이 몰아친 뒤 지난해부터 코스닥과 장외시장이 급격히 침체되면서 성장성과 수익성이 빈약한 업체들이 경영환경 악화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이들 기업의 CEO들은 부실경영 책임을 회피한 채 경영권 유지에 목숨을 걸고 있고 이들 기업에 지분을 투자한 개인주주들은 코스닥시장 등록까지 회사가 유지돼야 한다는 생각에 빠져 있다. 비즈니스 모델 기반이 약한 중소 벤처기업들이 자본잠식과 도산이라는 구렁텅이로 빠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분명 이들이 살아날 길은 있다. 회생기미가 보이지 않는 중소 벤처기업 CEO는 전문경영인에게 과감히 자리를 양보하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또 미래 수익전망이 악화되고 회사 내재가치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면 현재가치로 회사를 청산해 주주들에게 잔존이익을 돌려주는 지혜가 필요하다. 벤처기업 경영환경이 '자기를 죽여야 모두가 살 수 있는 철학'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 죽을 줄 알아야 한다 지난 4월 벤처업계에 사건이 발생했다. 벤처지주회사인 코리아인터넷홀딩스가 주총을 열고 자진해산을 결의한 것. 회사청산을 곧 무능으로 인식해 부실기업을 껴안고 가는 중소 벤처기업들에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코리아인터넷홀딩스는 벤처환경이 악화해 당초 계획했던 업무를 수행하기 힘들 것으로 판단, 회사를 청산하고 남은 회사가치를 주주들에게 지분비율에 따라 배분했다. 마땅한 수익모델을 찾지 못하고 적자를 내면서 마지못해 회사를 꾸려나가는 중소 벤처기업과는 다른 선택을 한 것이다. 이 선택으로 회사는 죽었지만 주주들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온라인 게임 랭킹업체인 배틀탑의 이강민 사장도 경영권 욕심을 죽이면서 회사를 살리는 결단을 내렸다. 이 사장은 보유지분 25% 가량을 2대주주인 ICM(삼성전자 계열사)에 위임하고 전문경영인에게 CEO 자리를 내줬다. 경영활동이 어려워지고 제대로 된 수익모델을 창출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대주주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철학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신재정 인터넷기업협회 국장은 "비즈니스 모델이 다양해지고 경쟁업체가 대거 나타나면서 일부 인터넷 벤처기업들이 수익성 악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회사와 경영진ㆍ주주들이 자기를 죽이면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한다. ◆ 현실은 정반대로 간다 무능한 CEO들은 경영권 유지에만 급급해 활로모색을 두려워하고 있고 기존 주주들은 일단 코스닥 등록까지는 가야 한다며 회사가 부실해져도 일단 꾸려나가야 한다는 위험한 생각에 빠져 있다. 급변하는 경영환경에 적응도 못하고 미래에 대한 확고한 비전도 없이 회사를 운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주가조작을 통해 주가를 올린 뒤 대주주들이 주식을 팔아치워 대규모 차익을 챙기는 경우가 나타나고 수익성 없는 부실기업들이 기업인수합병(M&A)과 A&D 등을 통해 뒷문으로 코스닥에 들어오고 있다. 앨빈 토플러는 벤처기업의 70%가 망하면서 세대교체가 된다고 말한다. 70%에 해당된다고 생각하는 중소 벤처기업들에는 부실을 껴안지 말고 자기를 죽이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또 기업청산시 청산가치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정책적인 시스템도 만들어나가야 한다. '청산은 무능'이 아니라 '청산은 재탄생'이라는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 홍윤선 전 네띠앙 사장은 "벤처기업들도 성장단계별로 경영자가 바뀌는 문화적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며 "회사를 청산하고 많은 벤처기업 CEO들이 전문경영인에게 자리를 내주는 것은 벤처환경 변화에 따른 자연적인 현상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정명기자 정민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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