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이 정부 운영 58개 기금 가운데 방송발전기금 등 24개 기금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하고 장기적으로 폐지토록 기획예산처에 권고했다. 정부는 틈만 있으면 각종 기금을 마구잡이로 설치하고 주먹구구식 운영해 온 것은 누차 지적된 일이다.
감사원이 21일 발표한 `기금관리 및 운용실태`에 따르면 지난 80년 대비 2002년의 국내총생산(GDP)은 15배, 일반회계는 18배 증가한 반면 기금은 45배나 늘어났다. 특히 올해 기금 운용액이 191조원으로 일반회계의 두 배에 가깝고 그 가운데 29.2%인 56조원이 일반ㆍ특별회계나 다른 기금에서 들어오며, 24.1%인 46조원이 다른 회계로 빠져나가는 등 재정의 투명성이 저해되고 있음에도 정부가 `칸막이식` 기금운용을 계속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의무를 저버리는 일이다.
감사원이 밝힌 기금의 방만한 운영 실태를 살펴보면, 무늬만 기금이지 실제로는 일반회계인 여성발전기금을 비롯해 허위 세금계산서를 받고 시설자금을 대출해준 관광진흥기금, 가입자의 절반이 `위장 농어민`인 농어가목돈마련저축장려기금 등 목불인견(目不忍見)이다. 더욱이 42개 기금 가운데 37개 기금이 중장기 기금운용계획 없이 당해 연도 운용계획만 그때 그때 수립했으니 `기금은 먹는 사람이 임자`라는 얘기를 실감케 한다.
따라서 정부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고 감사원의 지적을 도외시하지 말고 범정부 차원으로 정부 회계의 단순화를 위한 본격적인 개편작업에 나서야 한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개인들도 여러 개의 신용카드를 하나로 줄이고 있다. 여러 개의 신용카드를 보유하는 것은 결국 신용파탄의 원인이 됐기 때문이다. 일반회계ㆍ특별회계ㆍ기금을 오가며 부처마다 내 몫 늘리기에 급급하는 사이에 재정이 구멍 나는 것이다.
물론 기금별로 이익집단이 얽혀있어 부처의 저항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내년 총선을 앞둔 정부로서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역대 정부들이 선거를 앞둔 해만 되면 갖가지 선심성 사업을 위해 재정투융자 특별회계니 지방양여금이니 해서 비합리적인 회계를 신설해 왔다. 참여정부도 기존의 기금을 존치시키려는 유혹이 없을 리 없다. 하지만 진정한 정부개혁은 정부의 방만한 재정을 추스르는 것에서 시작돼야 할 것이다. 만약 중장기적인 기금의 전면개편이 손쉽지 않다면 각 부처는 당장 가능한 자체 기금운용의 효율성 제고 방안이라도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가기를 바란다.
<부산=김진영기자 kjy@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