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철밥통'과 경영행정

언제부터인가 직업공무원을 '철밥통'이라 부르고 있다. 법으로 신분이 보장되기 때문에 그렇지 못한 민간에서 시기 섞인 시각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상대적으로 시대의 변화에 다소 감각이 떨어지고 대응이 뒤지는 측면을 비아냥거리는 말이다. 그러나 세상에 변화하지 않는 것은 없다.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철밥통의 세계' 또한 엄청난 변화의 파도 한가운데 서 있다. 물론 이러한 변화의 파도는 공무원 스스로가 자각해서 주도하는 것은 아니며 외부환경의 변화로 불가피하게 내몰린 상황이다.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과 함께 무한경쟁으로 대변되는 새로운 세계 정치ㆍ경제 질서의 개막, 정권교체 등에 따른 정치와 행정간의 관계변화, 경제성장에 따른 민간 부문의 비중 증가 등 여러 요인들이 지적된다.?그러나 자치단체의 입장에서는 무엇보다도 지난 95년 본격적으로 도입된 지방자치제가 철밥통 세계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종래의 중앙집권적 행정틀에서 벗어나 구조적으로 낮은 세수입으로 주민에게 최대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 민간경영원리를 행정에 접목시키는 일에 눈을 뜰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서울시의 경우에도 민선 1기 시장부터 줄곧 '경영시정' '수요자중심 시정' '고객만족 시정' 등의 새로운 캐치프레이즈가 등장했고 이를 시정에 반영하고자 여러 측면으로 노력을 기울여왔으나 결과적으로는 시민들에게 제시할 만한 성과는 없었다. ?그러나 최근의 경영시정은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새로 취임한 이명박 시장의 몸에 밴 민간경영원칙과 기법이 시정에 직접 반영되면서 서울시의 철밥통 세계에 신선한 충격과 함께 커다란 변화의 물결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취임 이후 불과 4개월여 남짓한 기간이지만 경영마인드는 전 시 공무원의 기본 사고이며 모든 일 처리의 기본준칙이 됐다. 가시적인 성과도 예측되고 있다. 올 하반기에만 총 2,652억원을 절감할 계획이며 특히 창의적 업무개선으로 535억원을 절감할 계획이다. 종래의 예산절감이 대부분 사업축소 또는 불용처리에서 나온 것이었다면 이번에는 사업은 계획대로 하면서 일 처리 기법을 변경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여 만든 진정한 예산절감이기 때문에 더욱 값진 것이다. 이러한 준비의 일환으로 경영마인드의 체질화를 위해 4급 이상 모든 간부가 삼성인력개발연구원에 입소해서 2박3일의 교육훈련을 받고 있다. ?어디 이러한 노력이 비단 서울시뿐이겠는가. 중앙정부를 비롯해 모든 자치단체가 민간기업의 경영원리를 도입하려 애를 쓰고 있고 부분적으로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보고된다. 그러나 여기에 우리 모두가 주의할 점이 있다. 행정에 있어 경영을 강조하다 보니 효율성과 비용절감을 지나치게 우선시하는 경향이 생기고 이에 따라 행정이 추구해야 할 공공성이라는 다른 측면을 소홀히 하지는 않은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마거릿 대처 영국 수상이 지방행정개혁의 기치 아래 강력히 드라이브를 걸었고 아직도 행정에 민간경영을 도입한 성공사례로 소개되고 있는 공공 부문의 '경쟁입찰제도'가 행정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비판 아래 참혹한 실패로 마감한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효율성과 비용절감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어디까지나 수단에 불과한 경영기법 도입 자체가 목표화돼 나타난 부작용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경영행정의 의미가 무엇이며 왜 도입이 필요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다시 한번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행정에의 경영도입은 여러 가지로 정의되고 있지만 핵심은 '기업가적 사고와 정신' '민간경영기법과 원리의 도입'이라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는 것을 기본으로 환경의 변화, 고객들의 변화에 신속히 대응해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경영행정이 기대하는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민간경영의 기본사고와 기법을 받아들이고 실천에 옮기려는 공무원들의 사고와 행태, 즉 경영마인드의 확립이 기본이다. 그러나 실질적 경영행정은 공무원의 경영마인드 확산만으로 정착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이 행정제도와 행정문화의 개혁이다. 무늬만 그럴듯한 지방자치제, 많은 사람이 남에 의존해 무임승차하고 있는 계급제 업무구조, 시골의 면사무소 공무원이나 서울시 공무원이나 똑 같은 획일적 월급구조, 재량의 여지가 없는 '상명하달(top down)'식 행정문화 등 경영행정을 가로막는 장해요소가 너무나 많다. 경영마인드의 확산과 함께 병행해서 개선돼야 할 사항이다. 경영행정은 기존의 철밥통의 세계에 또다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철밥통이야 법으로 깰 수는 없겠지만 경영행정은 추진 성과에 따라 각자의 철밥통 크기를 조정해나갈 것을 요구하고 있다. 결국 공무원 각자의 경영마인드가 자신의 철밥통 크기를 결정하는 것이라 하겠다. /김병일<서울시 지역균형발전추진단장> document.write(ad_script1); ▲Top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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