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신년 특별인터뷰] 전철환 한국은행 총재

"GDP·물가·국제수지 균형 최우선"대담: 김준수 정경부장 jskim@sed.co.kr "우리나라는 IMF체제의 어려움 뿐 아니라 지난해 미 테러사건으로 인한 세계경제 침체를 그 어느 나라보다 훌륭히 극복했습니다. 올해 우리 경제는 상반기는 다소 어렵겠지만 하반기부터 수출이 회복되면서 되살아 날 것입니다." 전철환 한국은행 총재는 특유의 활기찬 표정에 한국경제의 새해 전망을 밝게 담아냈다. 물가가 안정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재정ㆍ금융정책 툴(수단)에 여유가 많아 그만큼 대응하기 용이하다는 것이 낙관적 견해의 바탕이었다. 전 총재는 김대중정부들어 임기를 거의 채우고 있는 몇 안되는 기관장중 한사람이다. 그만큼 안팎의 신망이 높다. 전 총재는 한은총재의 첫번째 덕목으로 '시장감각'을 꼽았고, 경제학자들에게는 '현실감각'을 주문했다. 전 총재를 만나 지난해를 반추해보고, 올해 우리 경제 전망을 들어봤다. -지난해 우리 경제는 극심한 경기침체의 어두움을 거쳐 연말로 가면서 희망의 빛이 보이기 시작한 한 해 였습니다. 지난해 우리 경제를 복기한다면 어떻게 보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 당초에는 하반기부터의 경기회복을 예상했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중반기 경제회복 속도가 늦어지면서 우려가 커졌습니다. 그러다 9ㆍ11테러사태를 맞아 완전히 가라앉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테러의 영향을 덜 받았다고 봅니다. 그 이유는 첫째, 4년전의 외환위기가 구조조정을 강요했고 이에 따라 우리 국민이나 기업들이 위기에 대한 내성이 강해졌습니다. 두번째, 재정이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런 여유 때문에 2000년 하반기이후의 경기급락에 재정지출 확대로 대응할 수 있었습니다. 세번째는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리 산업이 정보통신(IT)에 집중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또 2001년 하반기부터 외환위기로 얼어붙었던 국민들의 소비심리가 회복되면서 경기후퇴에 버팀목이 됐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틀은 계속 유지해야 합니다. 경제가 괜찮을 때 흑자재정 확충등 경기조절 수단을 키워나가야 합니다. -지난해 우리 경제를 반성해 보면서 정부가 재정을 조금 더 일찍 풀었더라면 경기가 그렇게 급격히 추락하지 않고 회복속도도 빨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금리 역시 좀더 빨리 내렸으면 경기회복 속도가 빨라지지 않았을까요. ▦ 한은은 2000년9월에 오히려 금리를 올렸습니다. 그 때는 2001년 상반기의 물가불안이 우려돼 그렇게 했습니다. 2001년들어 2월부터 5월까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대로 올라섰습니다. 5%는 '초 인플레이션(hyper-inflation)'으로 가는 분기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2001년 들어서는 하반기의 물가가 안정될 것으로 예상해 상반기부터 금리를 내린 것입니다. 재정문제에 대해서는 지난해 3월부터 보다 과감히 재정투입을 하자고 우리가 목소리를 냈습니다. -새해 경기에 대해 낙관적인 전망이 확산되고 있으나 일각에서는 오히려 더 나빠질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올 한해 경기를 어떻게 보시나요. ▦ 최근 조기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경기회복시기가 중요합니다. 미국 경제는 그동안의 금리인하, 감세, 재정지출 효과 , 테러전쟁 조기종결 등으로 올 중반경에는 회복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합니다. 이에 따라 우리도 최근의 소비나 건설투자 개선추세가 이어지더라도 상반기까지는 수출이 회복되기 어려워 경기가 완만한 속도로 개선되다가 미국경제가 호전되는 3ㆍ4분기부터 뚜렸이 좋아질 것으로 보입니다. -IT, 특히 반도체 경기는 어떻게 보시나요. ▦ 지난해 반도체는 가장 심각한 불황을 겪었습니다. 올해도 PC의 신규수요나 교체수요가 당분간 저조할 것으로 보여 중반경까지는 반도체 경기가 부진할 것으로 보입니다. 중반이후 무선통신기기, PC 등을 중심으로 반도체 수요가 되살아 나면서 서서히 회복될 것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합니다. -엔저에 따라 세계경제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올 세계경제나 국제금융시장은 엔화동향에 좌우될 것으로 보는데요. ▦ 일본경제가 올해도 썩 좋아질 것 같지 않습니다. 엔이 계속 가치가 떨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만일 엔가치가 무작정 떨어지면 이웃나라들이 가만히 있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뿐 아니라 위안화도 들썩들썩 할 수 있습니다. -엔저를 미국이 어느 정도 용인하고 있지 않나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 언론에서 그런 보도를 봤습니다. 그러나 미국도 무역적자가 많습니다. 미국 수출기업들의 불만도 큽니다. 일부 언론에서는 엔달러 환율이 최악의 경우 140엔대로 올라 설 수 있다고 봤는데 그렇게까지 될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한은의 경기전망이 '내년 중ㆍ하순 회복'으로 바뀌면서 통화정책도 그동안의 완화기조에서 '중립'으로 바뀌는 것 아닌가 하는 예상이 커지고 있습니다. ▦ 립이라는 표현보다는 상하 신축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여지(room)가 있다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물가가 3% 아래로 내려간다면 금리를 신축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다. 미국등 다른 나라를 보면 물가상승률은 우리보다 약 절반 수준인데 금리는 3분의 1 수준인 경우도 있습니다. 올해는 불확실성이 워낙 크기 때문에 각종 리스크를 감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엔저 뿐 아니라 미국경제의 회복이 지연될 수 있고, 테러전쟁이 주변국으로 확대되면서 국제유가가 급등할 수도 있습니다. 결국 통화정책은 이 같은 상하방 리스크를 충분히 감안해 운용할 것입니다. -올해는 대선, 월드컵등 큰 행사로 돈이 많이 풀리는 한해가 될 듯합니다. 물가는 어떻게 전망하시나요. ▦ 지난해는 소비자 물가가 연평균 4%대의 높은 수준을 보였지만 올해는 3%수준을 예상합니다. 먼저 유가등 국제원자재 가격이 안정될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 공공요금도 지난해 크게 올랐기 때문에 올해는 상승률이 낮아질 것입니다. 국내경기 회복이 그렇게 빨리, 쉽게 진행될 것으로 보이지 않아 내부적인 수요압력도 크지 않은 상황입니다. 월드컵이나 대선등도 과거경험에 비춰볼 때 물가상승압력이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 내년 우리 경제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 될까요. ▦ 결국 균형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경제성장률(GDP), 물가, 국제수지 등 각 부문이 균형을 이루고, 더 중요한 것은 그러한 균형이 꾸준히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경제의 구조틀을 튼튼히 바꿔나가야 합니다. -우리 시장이 냄비처럼 너무 쉽게 뜨거웠다가 쉽게 식곤 하는 것 같습니다. 주식뿐 만 아니라 채권시장이나 외환시장도 마찬가지 입니다. 특히 최근들어 채권, 외환시장에서 이러한 현상이 자주 발생하고 있습니다. ▦ 시장 참가자들이 수시로 발표되는 국내외 경제지표의 움직임 등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따른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합니다. 시장의 자율적인 가격결정 메커니즘은 존중돼야 하지만 지나친 과민반응이나 단순한 불안심리로 금리, 주가, 환율등이 급변동하는 것은 시장의 안정성을 훼손하고 실물경제의 안정성을 해친다는 점에서 정책당국의 적절한 대응이 불가피합니다. -금통위 체제에 대해 여러가지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전원 상임위원제 문제 등을 포함해 개편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데요. ▦ 상임위원 체제로 바꾼 지 얼마나 됐습니까. 시험기간이 너무 짧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절대적으로 완벽한 것은 없습니다. 그동안 금통위가 크게 잘못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외환보유액 1,000억불 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외환보유액 적립이나 운용문제에 대해 이제 본격적인 재검토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 외환보유액 문제에 대해 여러 의견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남북관계 및 불안정한 국제경제, 정치상황, 현재도 진행중인 금융ㆍ기업 구조조정 등을 고려할 때 외환보유액은 다소 넉넉히 보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총재님 임기가 올 봄이면 마감하게 됩니다. 그간의 경험에 비춰 한은총재는 이런 덕목과 자격, 감각을 갖췄으면 좋겠다고 하는 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지요. ▦ 시장에 대한 감각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정확하게 때를 맞춘 정책, 때를 맞춘 시장개입(just in time operation)이 필요합니다. 한은이 국고채를 직접 사겠다고 했을 때도 언제, 어느 정도의 규모로 살 것인가 하는 것은 고도의 경험과 판단력이 필요합니다. 만일 한국은행이 개입했는데도 실패했다고 하면 그 후유증이나 부담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커지기 때문이지요. 시장감각에서 한계개념(marginality)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입니다. 만일 외환시장에서 달러 사자가 1억달러, 팔자가 1억100만달러라고 한다면 바로 넘치는 100만달러가 환율을 좌우합니다. 즉 환율결정에 있어 무조건적인 물량공세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이 같은 한계선상에 있는 수급이 어떻게 되느냐 하는 점에 대한 인식과 대응방안이 중요합니다. -지난해 하순, 모 행사에서 우리 경제학자들의 무식(?)을 꾸짖으신 일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경제학계와 학자들에 대해 한 말씀 해 주시죠. ▦ 현재 새로운 경제문제들이 자꾸 나타나고 이를 해결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의 경제학 연구가 한계에 이르렀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세상이 바뀌고 경제현실이 달라졌는데도 현실 적합성이 떨어지는 기존의 이론이나 관점으로 경제문제를 보기 때문에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측면이 있습니다. 경제학의 방법론에 있어서도 보다 실질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풍토가 시급합니다. 정리=안의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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