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서 흔한 `반전시위`도 없어
쿠웨이트 정부가 이곳에 체류하는 2,000명도 넘는 서방기자들에 대한 프레스 카드 발급 등 각종 편의를 위해 쉐라튼과 매리엇 호텔 등에 마련한 공보실에 가면 수십 가지가 넘는 각종 책자가 쌓여 있다. 이중 대다수는 쿠웨이트에 대한 홍보물이지만 이중 몇몇 책들이 눈에 뛰었다. 제목을 보니 `이라크에 납치된 쿠웨이트 국민` `쿠웨이트인의 저항 기록` `쿠웨이트 참전 이라크 군인들의 양심선언` 등이었다.
이중에서도 가장 두꺼운 `이라크군의 전쟁범죄 기록`을 보면 무려 400페이지에 걸쳐서 이라크군이 저지른 만행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이라크군에 체포돼 고문을 당한 군인과 민간인 등 수백명의 고문 증언을 보면 일제시대 당시 일본 순사가 조선 독립열사에게 행한 고문들을 무색케 할 정도다.
이중에는 공중에 매달아 몽둥이로 패기, 손톱과 발톱 빼기, 전기와 불로 지지기 등 `고전적인 고문`도 포함돼 있지만 혀와 귀 자르기, 눈동자 후벼파기, 손에 못 박기, 깨진 병을 항문에 쑤셔 넣기, 화학물질을 몸에 부어 태우거나 눈에 부어 실명시키기, 남자 성기 자르기, 여자(특히 처녀)는 남편이나 가족이 보는 앞에서 강간하기, 나체로 최고 40도가 넘는 땡볕에 하루종일 세워놓기 등 총 38가지 고문방법을 열거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또 이라크군에 납치돼 아직까지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쿠웨이트인이 600여명에 달한다며 아직까지 생존해 있었더라도 연합군의 공격이 시작되면서 피살됐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기자가 방문한 여러 특급 호텔 로비에는 이라크군의 침공으로 파손된 건물과 약탈된 가게들의 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호텔 측에 따르면 몇년 전까지만 해도 전시된 사진 중에는 총살당한 쿠웨이트인의 사진까지 있었지만 침공 10주년을 맞으면서 철거됐다고 한다.
이라크 침공에 대한 교육이 내국인에게도 철저하게 실시되고 있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쿠웨이트 학생은 초등학교부터 교과서를 통해 이라크군의 침공과 만행을 배우고 있다.
이같이 90년 8월2일 시작돼 91년 3월1일 종료된 7개월간의 이라크의 침공은 쿠웨이트 국민에게는 한국인들의 36년 일제시대처럼 잊을 수 없는 아픔과 치욕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라크군의 침공이 90여만명에 불과한 쿠웨이트 국민들에게 큰 충격과 시련이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쿠웨이트 정부가 정치적, 또는 국제사회에서의 명분과 입지 강화를 위해 홍보활동을 조직적으로 하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쿠웨이트 국민들 중에는 이라크인에 대한 동정과 이번 전쟁에 대해 불만을 가진 사람도 상당수 있다고 들었지만 이곳에서는 흔한 반전시위조차도 없다.
<조환동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