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겉도는' 학교운영委

위원 76% 무투표 선출로 대표성 취약<br>회의 개최·안건 심의등도 '구색 맞추기' <br>제도 개선·학부모 등 적극적 참여 필요

서울 송파구에 사는 최(38)모씨는 최근 씁쓸한 일을 겪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자녀를 둔 최씨는 학교 운영에 관심을 갖다 보니 지난주 운영위원 선거에 나가 당선됐다. 두 자녀가 다니는 S초등학교는 올해 마침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학생을 둔 학부모가 사임하게 돼 보궐선거를 실시했다. 그러나 말이 선거이지 무투표로 자동 선임되는 바람에 ‘과연 대표성이 있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었다. 알고 보니 학교 운영위원 10명중 대부분이 무투표로 당선된 사람들이었다. 학생들에게 민주주의의 모범을 보여줘야 할 학교운영위원회(학운위)가 어린이들의 학급회장 선출 방식만도 못한 방법으로 구성되고 있는 것이다. 학부모들의 참여가 부족해서 어쩔 수 없다고는 하지만 인터넷 투표나 우편투표 등 적극적인 대책을 찾으려 하지 않는 학교측의 태도가 쉽사리 이해되지 않았다. ‘교육자치의 꽃’이라 불리는 각급 학교의 학운위 제도가 알맹이 없이 헛돌고 있다. 운영위원의 구성에서 회의 개최, 안건 심의 등이 당초 취지와는 달리 형식적인 ‘구색 맞추기’ 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96년 처음 도입돼 2000년 사립학교까지 의무적으로 설치된 학운위는 예산, 급식, 교육과정 운영 등 학내 중요 안건을 심의한다. 교육인적자원부가 지난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514개 초ㆍ중ㆍ고교를 무작위 실태조사한 결과, 학부모 위원의 경우 무투표로 선출한 학교가 394개교로 전체의 76.6%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교직원 회의에서 선출하는 교원위원의 경우도 경쟁률이 1.22대 1에 불과했으며, 교원위원 정수와 후보자수가 동수여서 사실살 선출의 의미가 없는 학교도 399개교(77.6%)를 차지했다. 위원 구성상 나타난 취약한 대표성의 문제는 그대로 학운위 운영에도 반영됐다. 법상(초중등교육법 시행령)으로 가장 구성비율이 높은 학부모 위원(40~50%)이 제출한 안건은 294건으로 1.5%에도 미치지 못한 반면, 학교장이 제출한 안건은 무려 93.4%인 1만8,518건을 차지했다. 조사대상 학교들의 연간 회의 개최 횟수도 평균 4.8~5.8회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학부모, 지역 인사 등 교육 구성원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학교측의 활성화 노력은 물론 학운위 자체에 대한 제도 개선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국회 교육위원회의 이주호(한나라당) 의원은 “학운위는 철저한 민주주의적 질서에 기반해야 학생들에게 건전한 민주주의적 가치를 보여줄 수 있다”며 “학생 대표를 학교운영위원회에 포함시켜 학칙관련 이외의 안건 결정에 참여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논회(열린 우리당) 의원도 “현재의 학운위 제도는 나무는 심었으나 뿌리가 없는 상황”이라며 “학운위를 제대로 운영하지 않는 학교에 대해서는 관할 교육청의 시정명령을 강화하고 학생회, 학부모회, 교사회의 법제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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