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대일 적자는 숙명인가

올해 대일 무역적자가 사상 최대를 기록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작년도 대일 무역적자는 147억1,300만달러로 1996년의 156억달러, 95년의 155억달러 이후 최대치를 기록한 바 있는데 올 들어 적자규모가 급격히 늘어 상반기 중 80억 달러를 훌쩍 넘어섰다. 올해의 대일적자는 80억 달러대로 예상되는 무역수지 흑자의 배에 이르러 배보다 배꼽이 큰 형국이 될 전망이다. 50년 넘은 적자 언제까지 대일무역적자는 `고질`이라는 표현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한 복잡한 현상이다. 1948년 정부수립이후는 물론 1965년의 한일국교정상화 이후 우리나라는 일본과의 교역에서 단 한번도 흑자를 내본 적이 없다. 앞으로 언제 흑자 아니 수지균형이라도 이룰 수 있을 것인가에 생각이 미치면 아득하기만 하다. 대일 무역적자는 한국인이 져야 할 숙명의 굴레가 돼버린 게 아닌가 여겨지기도 한다. 그 원인에 대해서는 수많은 논의가 있지만 결론은 하나다. 일본의 돈과 기술로 경제개발을 이룬 대가라는 것이다. 산업발달 단계의 격차가 낳은 결과라고 할 수도 있다. 일본의 도움으로 우리는 세계 10위권의 무역대국이 되었으므로 종합적인 대일 교역수지는 크게 흑자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의존적인 관계가 너무 장기간 지속되면 예속관계로 발전하게 마련이다. 최근의 대일 무역적자의 배경에는 몇 가지 주목되는 부분이 있다. 연구개발 투자에 달린 것이긴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국가간 기술격차는 좁혀지게 마련이다. 비록 가짓수로는 미미하다 해도 우리나라가 일본에 기술적으로 앞선 분야도 등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무역적자가 커지고 있다는 것은 기술 외적인 데에도 문제가 있지 않냐는 것이다. 기술 외적인 문제와 관련해서 하나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가격이다. 대일 무역적자의 확대는 일본경제가 저물가 저성장의 디플레경제에 빠져 있는 가운데 나타나고 있다. 일본은 중국과 산유국인 중동국가를 제외한 세계의 모든 나라들과의 교역에서 흑자를 내는 전통적인 수출강국으로서 국내시장 위축 부분마저 수출로 커버해야 하는 경제구조다. 국내 물가가 떨어지면 수출가격이라도 올려야 한다는 얘기다. 가격은 통상적으로 수요공급의 원리에 따라 결정된다. 그러나 한 나라의 산업이 예속단계에 들어가면 수요공급의 원리는 무용지물이 되고, 공급자에 의해 결정된다. 대일무역 적자에 그런 요소가 없는지 살펴야 할 때다. 중국이 우리와는 달리 일본과의 교역에서 흑자를 누리고 있다는 점도 관심사다. 중국의 대일 흑자는 한.중.일간 산업구조의 차이와 일본기업들의 중국내 생산이 증가한 데에서 주로 기인한 것으로 평가된다. 일본이 우리에게서 흑자를 보듯이 우리는 한ㆍ중수교이후 중국과의 교역에서 흑자를 보고 있고 그 힘으로 전체적인 무역수지 흑자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한중일 간의 맞물림 현상은 3국간 분업체제가 결과한 자본이동의 선순환 구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관계가 언제까지 지속 가능할 것인가. 중국의 기술추격 속도에 비추어 우리의 대중 무역수지도 머지않아 적자반전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그렇게 될 경우 한국경제가 설 땅은 없다. 대일 적자 축소에 우리 경제의 사활이 걸려 있는 이유다. 정책의 근본부터 바뀌어야 대일 무역적자를 말할 때면 으레 부품과 소재의 대일 의존도를 원인으로 꼽는다. 그러나 가전제품을 비롯 자동차 골프용품에 이르기까지 완제품 수입규모도 날로 커지고 있다. 부품ㆍ소재산업의 육성, 일제선호 자제와 같은 구호성 정책으로는 한계가 왔다. 뭔가 근본부터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본다. 윤진식 산자부 장관은 대일무역적자와 관련해 “기존의 수출과는 한 차원 높은 새로운 수출전략이 필요하다”고 했다. 거시경제를 다루던 윤장관의 미시적 처방 솜씨를 기대해본다. <논설실장 imj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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