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청와대, 여의도로 옮겼나?

적어도 18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룸은 여의도 국회 기자회견장이나 다름없었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오전 기자회견에 대한 청와대의 논평은 전날 회견 소식에 예견되기는 했으나 그 수위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역사의 시계추를 유신독재로 되돌리자는 것인가’라는 제목의 논평에는 자극적인 용어와 표현이 난무했다. ‘유신독재의 망령’ ‘반민주적 포퓰리즘’ ‘민주인사 탄압의 주범과 종범’…. 상대방 비하 표현이 너무나 일상화돼 이제는 여야의 논평을 뺨치고 있다. 오히려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의 반박 기자회견 내용은 차라리 양반이다. 이병완 비서실장 주재로 열린 정무점검회의의 발언 수위는 더 높다. “박 대표 발언은 유신시대 구국봉사대를 연상시킨다”는 험담과 “한나라당이 검찰 중립을 외치다니 소가 웃을 일”이라는 비아냥까지 나왔다. 청와대는 “한나라당의 정체성 공세가 인내심의 한계를 넘었고 도무지 묵과할 수 없다”고 했다. 공안사건과 인권탄압의 희생자들이 적지않은 청와대 참모진으로서는 청와대의 표현처럼 ‘민주인사 탄압의 뿌리’를 이어온 한나라당의 공세를 참지 못할 수도 있을 법하다. 그러나 문희상 의장이 박 대표의 기자회견에 충분히 맞대응을 한 마당에 청와대까지 사생결단식으로 맞불을 놓은 것은 적절치 못하다. ‘유신독재의 뿌리’를 들먹이며 국정의 파트너로 도무지 인정하지 않을 듯한 대목은 청와대가 그토록 갈구하던 ‘대연정’ 정신에도 어긋난다. 청와대가 ‘뿌리가 다르다’는 여권 일부의 반대에 아랑곳없이 대연정 구애를 펼친 것이 엊그제 아닌가. 대연정 제안의 순수성마저 의심하기 충분하다. 이런 연유인 듯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에게 보고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비서실장이 정무점검회의에서 결정했다”며 즉답을 피해갔다. 이번에 물러서면 끝장이라는 듯한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식의 논평은 여의도 정치바닥에서조차 청산해야 할 후진적 정치문화다. 언론에 대고 격한 표현을 쏟아놓는다고 해서 정체성의 진실과 이념의 순수성이 제대로 전달되지도 않는다. 청와대의 반박논리가 옳고 그름을 떠나 어느 쪽이 이성을 잃었는지, 누가 원인을 제공했는지를 따지기 전에 청와대의 이날 논평은 또 다른 형태의 색깔논쟁에 다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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