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는 또다시 거리를 휩쓰는 농민들의 분노를 목격하게 된다. 그래서 '중국과의 세이프가드 재협상'과 '밀실협상 타파'라는 슬로건을 보는 우리의 마음은 편하지 않다.
하지만 정작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것은 농민들이 자신들의 분신과도 같은 마늘밭을 그대로 갈아 엎어버리는 광경이다. 도대체 왜 이런 모습을 또 봐야 하는가.
협상은 협상가들만 하는 것이 아니다. 겉으로 드러나기에는 중국ㆍ한국의 협상가들이 마주 앉아 마늘의 세이프가드 문제를 논의한 것 같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다.
협상가들이 자기 마음대로 협상을 하지 않는 한 협상가는 각각 자국농가, 더 크게는 자국국민 전체의 입장을 대변할 따름이다.
그런 점에서 전략과 입장을 결정하는 예비협상의 단계에서 협상은 이미 시작된 셈이다. 하지만 이번 협상에서 중국과는 달리 우리측 협상가들은 우리 농민의 입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왜 그런가.
왜 마늘문제의 가장 당사자인 농민들의 의견과 입장이 협상과정에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을까. 수차 지적돼온 것이지만 기본적으로 협상에서 이해당사자가 자신의 입장을 반영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 구비돼 있지 않다.
한두 차례 농민들의 의견을 듣는 모양새는 있을지 모르나 구체적 협상안이 오가는 과정에서까지 이들의 의견이 반영되거나 조율되는 되먹임구조(feedback system)는 없다.
그러니 농민들의 의견제시에 대해서는 항상 "앞으로의 협상과정에서 충분히 반영되도록 고려하겠다"는 공허한 약속만 되풀이할 뿐이다.
이런 되먹임구조가 없는 상태에서 '세이프가드 연장불가 합의' 혹은 '2003년부터의 마늘 수입자유화'가 농민들에게 전달되지 않은 것은 어쩌면 예견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부속서에 규정된 이 합의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것은 단순한 실수라고 보기에는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이는 협상의 결과에 대한 판단을 떠나 도대체 무엇 때문에 협상을 하는지 순간적으로 망각한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협상도 마찬가지지만 마늘협상은 타결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결과가 우리 농업에 반영될 때 더 중요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농민들에게 '밀실협상'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마늘협상은 또 통상협상조직이 가지는 문제점을 선명히 드러낸다. 통상교섭을 전문적으로 위임받은 '통상교섭본부'와 상대적으로 농민과 농업을 이해하는 '농림부'가 제대로 교감하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을 분명히 보여줬기 때문이다.
세이프가드 연장불가를 사전에 합의했느냐의 여부를 둘러싸고 전(前) 통상교섭본부장과 전(前) 농림부장관이 드러낸 인식의 차이는 이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도대체 한 국가의 협상조직에서 이러한 의사소통 불일치가 존재하는 나라가 어디 있는가.
그래서 통상교섭본부의 문제는 반드시 시정될 필요가 있다. 교섭이라는 기능을 위임받은 상태에서 다양한 부처의견을 수렴하고 통합하는 역할을 기대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 순환보직제로 인해 통상교섭본부에서 전문가가 양성되기 어렵다는 것은 이미 지적된 일이기도 하다. 조직의 정비뿐 아니라 협상을 위한 의견수렴과정도 새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
즉 앞으로 지속될 자유무역협상ㆍ도하라운드와 같은 협상을 대비하여 이해당사자가 실질적으로 참여하는 메커니즘을 반드시 구축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정말 고쳐야 할 것은 우리의 협상문화다. 협상은 협상가만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의견과 태도가 협상과정과 전략에 반영된다는 점에서 사실상 우리 모두가 협상에 참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리 국회는 마늘협상을 포함한 어떤 협상에서도 협상가들의 어깨를 가볍게 해 준 적이 있었던가. 아니 지금도 8ㆍ8 재보선을 의식해서 농림부장관을 불러 윽박지르거나 '당장 재협상하라'는 어처구니 없는 말이나 하고 있지 않은가. 언론이라고 다를 바 없다.
사태의 본질을 냉철한 시각으로 분석하기는커녕 '거짓말'이니 '은폐'니 하는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단어를 쓰면서 국민을 오도하고 있지는 않은가.
언론은 국민의 다양한 의사를 수렴하고 결집한다는 점에서 협상과정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하지만 우리 언론의 보도태도 또한 우리 국회의 수준을 넘지 못한다면 지나친 말일까.
마늘문제에 대한 후속조치가 소홀했다는 점만을 빼고는 '마늘 수입은 국익을 위해 불가피했다'고 토로하는 한덕수 전 경제수석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어차피 무역으로 먹고사는 나라니 말이다. 합의사항을 제대로 알리지 않은 협상가들의 실수 역시 우리의 협상문화와 협상구조가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김기홍(KIET 연구위원ㆍ經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