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절망의 끝에서도 삶을 이어주는 힘은?

■어둠 속의 남자 (폴 오스터 지음, 열린책들 펴냄)


기발한 발상과 도회적인 언어로 미국문단 최고의 작가로 꼽히는 폴 오스터의 신작이 나왔다. 오스터의 책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열광하는 독자들이라면 특히 미국과 같은 시기에 국내에서도 책이 출간돼 기다리지 않고 신작을 읽는 기쁨까지 만끽하게 됐다. 화자인 브릴은 72세의 은퇴한 서평가로 최근 아내를 잃은 데 이어 교통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으면서 정신과 육체에 동시다발적인 고통을 겪고 있다. 괴로움으로 인한 불면의 밤을 극복하기 위해 그는 머리 속으로 이야기를 생각해 낸다. 침대에 누운 브릴이 만들어 낸, 구덩이 속에서 깨어난 남자는 이야기 속 주인공 브릭이다. 마술사로 생계를 이어가며 평범하게 살던 브릭은 전쟁 종식을 위한 암살자의 임무가 주어진 자신과 맞닥뜨린다. 2007년이지만 쌍둥이 빌딩도 멀쩡하고 이라크전쟁도 일어나지 않은 미국. 그러나 2000년 대통령 선거 이후 내전이 발발해 뉴욕을 비롯한 16개 주가 연방에서 탈퇴해 4년째 내전 중이다. 브릭에게 주어진 임무는 하루종일 방안에서 이야기를 써대는 루 프리스크를 죽이는 것. 그가 쓰는 것은 무엇이든 현실이 돼버리기 때문에 그가 죽어야 내전도 끝난다는 이유에서다. 한편 브릴은 구덩이 속 남자 브릭 못지 않게 자신도 깊고 험한 어둠 속을 헤매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머리 속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스스로와 이혼한 딸, 남자친구를 잃은 손녀가 안고 있는 상처와 죄책감이 드러난다. 우연이 엮여 만들어내는 필연적인 사건들은 팽팽한 긴장감으로 호기심을 자극해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만든다. 신작에서 오스터는 베스트셀러였던 ‘브루클린 풍자극’ 등 개인적 사건을 주로 다루던 전작과는 달리 개인적인 문제에서 정치적인 문제로 관심의 확장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의 여타 작품들이 그랬듯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서사 구조와 대화보다는 생각이 많은 서술 특징은 그대로다. 이야기는 절망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인 동시에 삶을 이어주는 힘이기도 하다. 브릴과 브릭, 두 주인공은 절망의 끝에서도 삶을 지탱하는 원천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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