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시제/김진일 한미은행장(로터리)

지난 일요일 시제를 지내러 고향에 다녀왔다. 당일 왕복을 위해 비행기를 이용하였는데 공항에서 같은 목적으로 각자의 고향에 내려가는 몇몇 분을 만나게 되어 겉으로는 순순히 따라나섰지만 속으로는 다소의 불만을 품고 있었을 우리집 큰아이에게도 도움이 된 듯 하였다.어릴 때부터 고향 선영에 데리고 다니면서 언젠가는 나의 뒤를 이어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감을 교육시켜 왔으나 아직도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는 큰애가 다소 못마땅하기는 하지만 서울에서 태어나 자라온 신세대가 시골에서 자란 나와 생각이 같으리라고는 기대하기 힘들어 솔직히 따라나서 주는 것만으로도 고맙지 않을 수 없었다. 산소에 이르러 오래전 내가 선친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큰 아이에게 해주고 있노라면 면면히 이어지는 세대의 의미를 실감하게 된다. 가끔은 세대차이에서 오는 어쩔 수 없는 의견대립이 노출되기도 하지만 그런대로 우리부자는 서로의 입장을 비교적 잘 이해하는 편이기에 별 문제는 없었다. 그러나 금년에는 사정이 조금 다른 것 같다. 우리 집안이 그렇게 큰 벌족은 못되지만 오랜 세월동안 고향에서 집성촌을 이루고 살아왔기 때문에 문중 소유의 선산에 여러대의 산소가 모여 있고 그래서 정해진 날짜에 함께 시제를 지내고 행사를 마치고 나면 모두 모여 음복을 하며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인 일가들끼리 이런저런 이야기가 자연 많아지게 된다. 하지만 경상북도 내륙지방의 집안 모임이 대략 그렇듯이 그런 자리는 철저히 장유유서가 기조를 이루고 좌장쯤 되는 집안 어른의 고집스럽고 단호한 논리가 좌중을 압도하다 보니 항상 훈계조의 분위기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게 마련이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어찌보면 사소하기도 하고 이제는 좀 바뀌었으면 싶은 고풍을 주장하여 나조차도 다소 부담을 느낀 분위기였고 특히 금년은 대통령후보로 나선 분들의 인물평에 많은 시간을 보냈으며 집안 어른들은 매우 단호하게 특정후보를 지지해야 한다는 비민주적인(?) 독단을 서슴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큰아이에게 시제 참가의 소감을 물었더니 영 대답이 신통치 않았다. 내년에 또 큰애를 데리고 시제를 지내러 가려면 앞으로 한해동안 무척 공을 들여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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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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