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헛 똑똑이' 미국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되놈이 받는다’는 속담이 있다. 애써 해놓은 일이 남에게만 이로운 결과가 되는 상황을 비유한 것이다. ‘죽 쑤어 개 바라지한다’는 속담도 같은 뜻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미국 측의 한국 자동차세제 개편 요구가 딱 그 모양이다. 미국은 우리 자동차세제 변경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현행 세제는 배기량에 따른 누진세 개념이 적용되고 있어 큰 차일수록 세금부담이 상대적으로 커 대형차 위주인 미국차에 불리하다. 그러니 미국차의 한국시장 진출 확대를 위해 세제를 바꾸라는 것이다. 지금 돌아가는 사정을 보면 미국의 요구가 받아들여질 것으로 보인다. FTA 협상이 핵심쟁점 빅딜을 통한 일괄타결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는 가운데 미 의회가 최근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자동차시장 개방압력을 강화하라’는 정책서한을 보내는 등 강경 입장이어서 협상에서 미국 측의 양보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미국차 한국시장서 경쟁력 없어 문제는 세제가 바뀌면 미국차 판매에 정말 도움이 될 것이냐 하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결코 그럴 것 같지 않다. 지난 2001년부터 2005년까지 국내시장의 수입차 판매랭킹 상위에 오른 미국차는 전무했다. BMWㆍ렉서스ㆍ벤츠ㆍ아우디ㆍ폴크스바겐ㆍ혼다 등 유럽과 일본차가 1~10위를 휩쓸었으며 지난해에도 포드가 겨우 8위에 올랐을 뿐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자동차세제는 미국차든 일본ㆍ유럽차든 똑같이 적용된다. 앞으로 세제가 바뀌어도 마찬가지다. 우리시장에서 잘 팔린 일본ㆍ유럽차들이 모두 배기량이 작은 소형차도 아니다. 한마디로 외제차는 모두 똑같은 여건에서 경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미국차는 5년이라는 오랜 기간에 단 한해도, 단 한 모델도 상위랭킹에 들지 못했다. 미국차의 판매부진이 미국의 생각처럼 세금 등 우리의 시장장벽 때문이 아니라 미국차 스스로에 문제가 있다는 반증이다. 가장 큰 문제는 미국차 자체가 우리 소비자들의 취향 및 시장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80~90년대 중반까지는 소비자들이 큰 차를 선호했고 그래서 당시에는 외제차 중 미국차가 인기였다. 하지만 그 후 고급차에 대한 소비자들의 욕구는 품질ㆍ안전성ㆍ저소음ㆍ편의성 등을 우선시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유럽과 일본은 이를 기민하게 파악해 소비자들을 파고든 반면 미국차는 시장변화에 둔감했다. 그 결과 지금 국내 소비자들에 미국차는 사실 여부를 떠나 ‘크기만 하지 기름을 많이 먹고 안전성과 편의장치가 처지며 시끄러운 차’로 인식되고 있다. 그런 이미지가 잘못된 것이라면 바로잡기 위한 마케팅 활동이라도 적극적으로 펼쳐야 하는데 그것도 아니다. 제품 자체에 대한 선호도가 낮은데다 브랜드 이미지 개선 노력조차 뒤떨어지니 일본과 유럽차에 맥을 못 추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개방할수록 日·유럽만 좋아져 미국 정부와 자동차업체들은 예전부터 판매부진의 원인을 자신들의 경쟁력보다는 시장환경 등 주로 외부요인에서 찾아 통상압력으로 해결하려곤 했다. 외제차 소유자에 대한 세무조사 금지, 형식승인 간소화 요구 등이 대표적 사례다. 그때마다 덕을 본 것은 미국차가 아닌 유럽과 일본차였다. FTA 협상결과 자동차세가 바뀌어도 신바람을 낼 곳은 미국이 아닌 유럽과 일제차이며 한국차에도 타격이 아닌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미국차는 한국시장에서 만큼은 국산차나 유럽ㆍ일본차에 위협적 존재가 아닌 탓이다. 이는 국내 자동차업계가 한일 FTA 추진에 대해 시기상조라며 강력 반발했던 것과 달리 한미 FTA에는 전혀 반대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는 데서도 뒷받침된다. 미국이 자신들의 단점 개선 노력은 뒷전인 채 개방압력을 높이고, 그 결과 시장이 열리면 열릴수록 유럽과 일본의 경쟁자들만 좋아진다. 통상협상에서 세계최강의 힘과 기술을 갖고 있다는 미국이지만 한미 FTA 협상의 자동차 분야에서 만큼은 아무래도 헛똑똑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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