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20년전의 자화상/홍관의 동부건설 사장(로터리)

요즘도 길을 가다 그들을 보면 필자는 그냥 무심히 스쳐버리지 못하고 차창속에서나마 한번 더 돌아보게 되곤 한다. 한눈에 봐도 여유있는 관광객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그들은 대체로 허름한 옷차림에 어딘가 주눅들어있는 모습이다. 조금 왜소한 체구에 가무잡잡한 피부색의 외국인 근로자는 흔히 볼 수 있지만 그들이 필자의 눈길을 끌고 마음속에 복잡한 감상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무엇때문일까.필자는 그들에게서 20여년전 우리의 자화상을 본다. 20여년전 가난에 찌든 수십만명의 한국인들이 당시 세계 원유시장을 좌지우지하며 콧대높던 중동 석유부국의 국제공항을 쭈뼛거리며 들어섰다. 건설회사 직원과 기능공들은 세계에서 가장 근면한 민족이라는 칭송속에 한푼이라도 더 벌겠다는 일념으로 열사의 살인적인 무더위속에서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했고, 귀국이 가까워지면 저마다 쓰지 않고 모아둔 물값과 수당으로 알뜰살뜰 마련한 가전제품 몇점에 득의양양해 했지만 남루한 차림의 키작고 노란 동양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속에서 기죽어 했다. 60년대에는 월남노무자 그리고 독일광부와 간호사로, 70년대에는 중동건설경기를 좇아 수많은 한국인이 탈가난의 꿈을 향한 고난의 행진을 계속했던 것이다. 지금 국내의 외국인근로자 수는 수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들은 20년전의 우리와 너무나 흡사하다. 가난에서의 탈출이라는 꿈을 안고 물설고 낯선 곳으로 와서 소위 힘들고 위험하고 더러운 3D업종에서 땀흘리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외국인근로자를 보는 우리의 시각이 근거없는 편견과 오만으로 가득차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신분상의 약점을 이용해 임금을 착취하고 학대하며 멸시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기사를 볼 때마다 필자는 우리 자신에 대해 심한 부끄러움과 회의를 느끼곤 한다. 사실 20년전이면 멀지도 않은 바로 어제의 일이다. 이제 겨우 조금 살만하다고 해서 어제의 곤궁함은 깡그리 잊고 과소비로 나날을 보내며 편하고 쉬운 일만 찾으려는 졸부의식이야 아예 논외로 친다고 하더라도 그들 외국인 근로자에 가해지는 동방예의지국(?) 한국인의 안하무인격 학대와 횡포는 인도주의적인 측면에서 결코 용서받기 힘든 죄가 아닐까. 역사는 돌고 돈다. 국가는 물론 역사속의 그 어떠한 존재도 흥망성쇠의 법칙으로 부터 결코 자유로울수 없다. 장래 우리가 받을 응보가 두렵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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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관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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