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동십자각] EU는 만만하다?

유럽연합(EU)과의 본격적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시작된다. 찬반이 극명하게 갈렸던 한미 FTA에 비해 한ㆍEU FTA 협상은 수월해 보인다. 미국이라는 버거운 상대와 일전을 겨뤄본 만큼 협상에 나서는 정부나 이를 대하는 국민들 또한 한결 여유가 있다. 우리에게 가장 민감한 농산물의 경우 개방 부담이 한결 덜하고 한미 FTA에서 논란의 쟁점이 됐던 투자자국가소송제(ISD)는 아예 협상 대상에 포함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정부의 발표다. 이에 따라 이르면 1년 내에 협상이 마무리될 수도 있고 어쩌면 한미 FTA보다 먼저 발효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언론 등을 통해서도 EU 27개국의 시장 규모가 4조달러로 미국의 2조9,000억달러를 크게 넘는 세계 최대 규모이며 현재 공산품에 대한 관세율이 4.2%로 미국의 3.7%나 일본의 3.1%에 비해 높기 때문에 관세 철폐의 효과가 클 것이라는 점만 부각되고 있다. EU와의 협상이 정부가 원하는 대로 쉽게 풀리고 그 결과 우리 경제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한ㆍEU FTA 협상은 한미 FTA라는 바탕 위에서 설정될 전망이다. 전반적으로 한미 FTA 수준의 개방에다 양측의 필요에 따른 요구가 추가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 영향력은 예상보다 훨씬 강할 수 있다. 한미 FTA 협상에서 막판까지 쟁점으로 남아 속을 태웠던 자동차만 하더라도 현재 우리나라 수입차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유럽 차다. 금융과 법률 서비스에 있어서는 영국이 세계 최강국이다. 의류ㆍ화장품ㆍ시계 등의 명품도 대게는 프랑스ㆍ이탈리아ㆍ스위스 등에 생산된 것이다. 농산물도 그렇다. 유기농제품과 유제품 등도 유럽 각국의 제품이 세계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미, 한ㆍEU FTA 협상이 비슷한 시기에 발효되면 미국산 제품보다 오히려 EU산이 한국시장을 휩쓸 공산이 더 큰 실정이다. 한미 FTA 협상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시작하는 한ㆍEU FTA 협상. 미국이라는 덩치 큰 상대와 한번 겨뤄봤다고 우리가 상대를 너무 만만하게 보는 건 아닌지 하는 우려가 들 수밖에 없다. EU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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