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美·中 '한반도 경쟁의 틀' 짠다

‘북한이 중국식 경제발전 모델을 택한다면 유익할 것이다’ ‘우리 미국에도 좋고 중국에도 좋은 한반도 장래 시나리오를 생각해보자고 중국 측에 제안했다’. 지난 9월 초 워싱턴포스트는 로버트 졸릭 미 국무부 부장관의 말을 이같이 전했다. 졸릭은 현재 미 행정부 내에서 중국정책의 총책임자로, 그리고 대북한 실용주의자로 통한다. 그는 나아가 6자 회담을 동북아 다자간 안보를 위한 발판으로 이용하는 데 관심을 갖고 있다. 졸릭의 이러한 접근은 9ㆍ19 베이징 6자 회담 공동성명 내용과 상통한다. 공동성명에는 북핵 문제 해결을 토대로 한반도 영구평화체제 협상을 위한 포럼과 동북아 안보협력 증진방안 모색 등이 포함돼 있다. 이러한 흐름은 70년대 초 미중 협상을 연상시킨다. 당시 두 전략가 헨리 키신저와 저우언라이는 양국간 화해에 한반도 문제가 ‘뜨거운 감자’라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그 결과 두 사람은 ‘한반도의 안정과 전쟁위험 감소, 그리고 다른 세력(러일 등)의 한반도 개입 방지라는 전제 아래 양국의 (한반도에 대한) 이익은 서로 공존할 수 있다는 데 비밀 합의했었다. 이 비밀 합의는 70년대 이후 우리 사회의 대내외 격변의 씨앗으로 작용했다. 그후 30여년이 흐른 오늘날 중국은 변했고 미중 관계도 변했다. 그리고 그 여파로 한반도가 새롭게 변하고 있다. 북한이 내몰리듯 개혁개방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남북 화해도 5년째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한미간 군사협력 재조정도 활발해지고 있다. 졸릭의 말은 한반도 문제를 둘러싸고 미중간 새로운 ‘협력 틀’의 필요성을 제기한 것이다. 그 ‘틀’을 ‘경쟁의 틀’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최근 예일대학의 역사학자 폴 케네디 교수가 한국을 다시 찾았다. 그는 미국이 아직은 중국을 얕잡아보고 있지만 미국의 영향력은 장기적으로 쇠퇴할 것이라는 평소 주장을 견지했다. 이런 인식은 미국의 한반도 정책에도 스며들고 있다. 먼저 대북정책이다. 미국이 북핵 문제에 매달려 있는 가운데 중국이 6자 회담의 주도권을 잡아가면서 북한의 중국 의존이 심화된다는 분석이 늘고 있다. 미국은 이 문제를 중시해왔다. 현재로서는 앞서 본 졸릭의 접근전략이 가시권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 연장선에서 앞으로 6자 회담의 미국 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의 행보가 주목을 끌고 있다. 미국은 남한의 변화 에너지에도 주목하고 있다. 한국의 IMF위기 이후 미국은 한국 및 중국 주변국들에 대한 직접투자와 자본투자를 크게 늘리고 있다. 푸르덴셜 같은 금융기관을 비롯해 이름 있는 외국기업들이 한국에 아시아 본부를 두려는 경향도 커지고 있다. 남한은 중국과의 경제협력 가속화로 이제 중국에 대한 수출의존도가 25%를 넘나드는 정도가 됐다(한때 우리의 대미국 수출의존도는 40%에 달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한국을 ‘여덟번째 우방국가’로 꼽는 미국은 최근 급증하는 한중 경협 에너지를 활용하는 데도 적극적이다. 미국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서두르는 것은 그 연장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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