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 4월 1일] <1659> 미혼 벌금


'결혼하지 않으려면 벌금을 내시오.' 만우절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1663년 4월1일, 네덜란드 남부 헤메르트(Gemert)시가 제정한 법령이다. 미혼 가임여성에게 벌금 50길더를 부과한 이 법령은 여성들의 반발을 샀지만 곧 네덜란드 곳곳으로 퍼졌다. 왜 그랬을까. 사람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당시 유럽 최강인 스페인 합스부르크가의 지배에 맞서 '80년 독립전쟁'을 치러온 네덜란드에서도 최전방인 헤메르트시에서 군대와 상공업ㆍ농업에 투입할 인력난을 겪자 내놓은 고육책이 미혼 벌금이다. 네덜란드는 이 정책으로 성공했을까. 그렇지 않다. 전쟁 종결과 무역의 번성으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로 자리잡자 사람들은 일보다 풍요로운 삶을 좇아 저택과 별장을 사들이고 그림과 음악을 즐겼다. 출산에 관심이 없었던 네덜란드는 인구정체와 함께 18세기부터 쇠락의 길을 걸었다. 힘이 빠져가는 네덜란드와 대조적으로 국력이 급성장한 프로이센의 비결도 인구에 있다. 나폴레옹이 천재 전략가라고 극찬했던 프리드리히 1세부터 그의 아들 프리드리히 빌헬름 치세까지 프로이센은 출산장려는 물론 남자들의 수도원행을 막고 중혼까지 허용하는 성개방 정책으로 인구를 두 배로 늘렸다. 군대를 증강한 프로이센은 훗날 300여개 국가로 갈라진 독일을 통일시켰다. 적정인구는 모든 나라의 과제다. 조선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의 침입을 예상한 율곡 이이의 십만 양병설은 조선의 인구수준에 비춰볼 때 불가능했다는 분석도 있다. 굳이 과거로 갈 것도 없다. 인구 문제는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세계에서 가장 낮은 대한민국의 인구증가율이 말해주는 미래상은 노인들로 가득한 농촌 현실에 다름 아니다. 기발한 장려책이 나와도 출산율은 요지부동이다. 미혼세를 넘어 미출산세라도 거둬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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