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칼럼] 두드리는 자와 듣는 자

한 사람이 손짓 발짓에 괴성까지 질러가며 사회자가 제시한 단어를 설명하고 다른 한 사람은 이를 열심히 듣고 답을 말한다. 하지만 정답은 사과인데 엉뚱하게도 호랑이라는 답이 나오고 방청객들은 폭소를 자아낸다. 듣는 사람의 머리에 고음의 노래가 흘러나오는 헤드폰이 끼어져 있어 설명자의 말을 제대로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어쩌다 정답을 맞추면 방청객들은 박수를 치며 한없이 즐거워 한다. 주말 TV 오락프로그램인 가족오락관에 자주 나오는 게임 장면이다. LG경제연구원의 LG주간경제 최근호(8월10일刊)에 이와 비슷한 실험내용이 소개됐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실렸던 내용이다. 스텐퍼드대학의 심리학과 대학원생인 엘리자베스 뉴턴은 한 사람이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박자에 맞춰 탁자를 두드리고 다른 사람은 그 소리를 듣고 음악을 맞추는 게임을 실험한다. ‘두드리는 자와 듣는 자(Tapper and Listener)’라는 실험이다. 두드리는 사람에게는 크리스마스 캐럴과 같이 누구나 아는 노래를 이어폰으로 들려주고 박자와 리듬에 맞춰 탁자를 두드리게 한다. 듣는 자는 이를 듣고 무슨 노래인지를 맞추면 된다. 모두 120곡 정도의 노래를 들려줬다. 얼마나 맞췄을까. 두드리는 사람은 50% 정도 정답을 맞췄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제목을 맞춘 노래는 단 3곡 뿐이다. 정답률이 3%도 안된다. 50% 가량 맞췄을 것이라는 예상률과 3%도 안되는 정답률, 이 차이가 바로 최고경영자(CEO)와 구성원 간 커뮤니케이션에서 나타날 수 있는 오류라는 게 이 실험의 요지다. CEO는 단순화한 전략 문구나 캐치프레이즈에 자신의 경험이나 지식 등을 담아 생각하고 구성원들이 이를 이해할 것으로 판단하지만 구성원들은 단지 탁자 두드리는 소리로 밖에 여기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오해가 발생하고 실행에 문제가 생긴다. 둘 사이의 간극도 더 벌어진다. 정부가 무리하게 강행하고 있는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방안에 대해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단지 경영의 관점에서 이 게임에 대입해 봤다. 취재지원 선진화라는 거창한 단어가 제시되고 각 부처는 이에 맞춰 선진화 방안이라는 단어를 알리기 위해 열심히 두드려댄다. 손짓 발짓도 했다. TV토론회가 열리고 수 십억원을 들여 멋진 통합브리핑 룸이라는 것을 만들기 위해 한여름 망치질로 요란했다. 실행 방안인 총리훈령의 취재지원에 대한 기준안도 마련되고 있다. 그래도 알아듣지 못하자 기준안을 바꿔가며 다시 설명할 태세다. 그런데도 여전히 엉뚱한 답만 나온다. 선진화 방안이라고 내내 설명했는데도 통제라는 대답뿐이다. 이젠 여기서 더 나아가 아예 듣지도 않으려 한다. 철회요구 성명서가 이어지고 통합 브리핑 거부 움직임도 확산되고 있다. 제대로 된 CEO라면 여기서 일을 멈춘다. 아무리 멋진 비전과 실천방향이 제시돼도 구성원이 먼 나라 얘기로만 받아들인다면 성과를 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는 게 오히려 병이 돼 기업발전에 저해되는 ‘지식의 저주(The curse of Knowledge)’라는 함정에 빠질 수 있다. 두드리는 자 게임의 메시지다.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도 이쯤에서 거두는 게 옳다. 다른 답만 나오는데 강행하면 불화만 커진다. 하물며 방향 자체가 틀리고 왜곡된 정보가 담겼다면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단지 권력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감시를 막으려는 비민주적 노력에 불과하다”는 국제언론인협회(IPI) 사무총장의 말을 새겨볼 일이다. 이제 더는 취재지원 선진화라고 두드려대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다. 도통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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