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과유불급(過猶不及)

최근 한국은행에서 발표한 ‘주요 업종별 국내외 대표기업의 경영성과 비교’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표기업들의 부채비율이 드디어 100% 미만으로 떨어져 평균 99.5%에 그치고 있다. 이는 비교 대상인 세계 주요 기업들의 부채비율 182.3%의 절반 수준이다. 9년 전 외환위기 당시 우리나라 5대 그룹의 평균 부채비율이 약 480%에 달했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결과이다. 외환위기 직후 정부는 기업 구조조정을 주도하면서 최우선 과제로 재무구조 개선을 통해 부채비율을 200%까지 축소하자는 목표를 상정했다. 그런데 이제 대표기업들의 부채비율은 가이드라인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우리 기업들은 목표보다 두 배 더 우량해진 것인가. 우리 기업들의 재무건전성이 크게 향상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과도하게 보수적인 수준에 이른 것이 아닌가 싶다. 부채비율이 100% 미만이라는 것은 상대적으로 요구수익률이 높은 자기자본에 의존한 사업을 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투자 위축을 초래한다. 경제성장률이 최근 2분기 연속 1% 미만으로 나타나 저성장 우려가 대두되고 있는 현상이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과도한 보수성의 문제는 금융산업에서 더욱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자본시장통합법에 대비해 주요 증권사들은 자기자본 확충을 통한 대형화를 추구하고 있다. 국내 5대 증권사의 평균 자기자본 규모는 미국 3대 투자은행(메릴린치ㆍ골드만삭스ㆍ모건스탠리)의 약 17분의1 수준이다. 그런데 총자산의 경우 미국 3대 투자은행 평균이 약 750조원으로 국내 5대 증권사 평균 6조5,000억원에 비해 무려 115배나 높다. 자기자본의 확충만으로 축소할 수 있는 간극의 크기가 아니다. 총자산 증대의 열쇠는 레버리지이다. 부채비율을 비교해보면 국내 5대 증권사 평균은 270% 정도인 데 비해 미국 3대 투자은행은 2,400%에 달한다. 모건스탠리는 부채비율이 3,000%에 육박하지만 아무도 재무건전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물론 우리 증권사들도 무조건 부채비율을 높여야 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금융산업, 특히 투자은행업의 본질적 역량을 얼마나 강화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조달비용을 충분히 초과하는 수익을 확보할 수 있는 투자 능력과 정교하고 철저한 리스크 관리 능력을 먼저 갖춰야 할 것이다. 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는 안정성에 대한 일종의 강박관념을 갖게 됐다. 이로 인해 우리 경제의 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역동성이 많이 약화되고 있다. 이제는 효율과 성장에 더 관심을 기울여 안정성과의 균형을 찾아가야 할 것이다. 과유불급이라고 했다. 너무 지나치지 않았는지 되돌아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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