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8월1일] 나일 해전


1798년 8월1일 오후3시, 넬슨 제독이 이끄는 영국 함대가 나일강 입구 아부키르만에 정박한 프랑스 함대를 찾아냈다.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함대를 뒤쫓은 지 두 달여 만이다. 프랑스도 영국 해군을 발견했으나 양 함대의 거리가 좁혀진 오후6시까지 경계를 강화했을 뿐 별다른 대응에 나서지 않았다. 적정 정찰을 거쳐 작전계획을 세운 뒤 다음날이 밝기를 기다리는 게 이전까지의 해전 관행이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계산은 완전히 빗나갔다. 태양이 지중해의 수평선에 잠길 무렵 넬슨은 전열함 13척을 소총 사정거리까지 접근시켜 선공을 퍼부었다. 밤새 치러진 포격전의 결과는 영국의 압승. 주력인 전열함의 수와 크기에서 앞서고 함포 구경도 컸으며 해안포대의 지원까지 받을 수 있었음에도 전멸하고 말았다. 야간전투를 예견한 넬슨은 전등으로 아군 간 식별표시를 해놓은 반면 피아 구분도 못할 정도로 갈팡질팡했던 프랑스는 전열함 14척 중 3척이 격침되고 9척을 빼앗겼다. 프리깃 2척도 잃었다. 전열함 2척과 프리킷 2척만이 간신히 도망쳤다. 영국은 218명이 죽고 677명이 부상 당한 반면 프랑스의 피해는 전사 1,700명, 부상 600명, 포로 3,000명에 달했다. 나폴레옹의 첫 패배인 나일 해전의 결과는 근대사의 흐름을 갈랐다. 프랑스에 눌려 지내던 유럽 각국은 2차 동맹을 맺었다. 나폴레옹은 애써 확보했던 이탈리아와 지중해의 패권을 잃었다. 나일 해전의 승리를 넬슨이 전사하며 프랑스-스페인 연합함대를 격파한 트라팔가 해전(1805년)보다 높게 평가하는 시각도 있다. 이집트에 발판을 마련해 홍해와 인도를 지배하고 오스만튀르크까지 분쇄해 유럽을 완벽하게 포위, 알렉산더와 로마를 합친 것보다 큰 제국을 이루려던 나폴레옹의 야망이 꺾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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