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세계속의 한국 GQ를 말한다] 진대제 스카이레이크인큐베스트 대표이사

진대제 (前정통부 장관)<br> "한국공무원 대부분 국제용 아닌 내수용"<br>지나친 관리감독에 독창성·효율성 떨어져<br>차세대 지도자는 '경제와 세계' 잘 알아야<br>사회갈등·불신 해소하면 선진국 될수있어


“우리나라 공무원이나 국무위원은 대부분 국제용이 아니라 내수용입니다. 국회나 감사원 등의 지나친 관리감독 때문에 독창성과 효율성도 떨어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서울 도곡동의 사무실에서 만난 진대제(사진) 스카이레이크인큐베스트 대표이사는 참여정부에서 3년간 정보통신부 장관으로 공직생활을 한 경험을 바탕으로 정부 부문의 무사안일과 낙후된 국제감각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이어 “차세대 지도자는 경제를 알고 세계를 이해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며 “한국을 선진화ㆍ글로벌화해 국제사회에서 존경 받는 국가로 이끌어줄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게 국민적ㆍ시대적 요구”라고 강조했다. 그는 “참여정부는 지난 20년간 지속돼온 우리나라의 민주화 과정에 마침표를 찍는 역할을 했다”며 “이제는 글로벌 경험이 풍부한 차세대 리더가 한국의 역동성을 발전시켜 국민들을 잘살 게 하는 게 시대정신”이라고 강조했다. 진 대표와의 인터뷰를 끝으로 10회에 걸친 ‘GQ’ 시리즈를 마무리하면서 내려진 결론은 한국이 선진국 진입의 기로에 서 있다는 점이다. 한국인 특유의 역동성과 유연성ㆍ도전정신 등을 잘 살리면 선진국 도약이 가능하겠지만 지금처럼 기업과 정부ㆍ국민 간 갈등과 불신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만년 중진국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뜻이다. -한국 기업, 나아가 한국 경제의 가장 큰 자산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브랜드, 가치라는 것은 시기와 지역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것이다. 지금 우리기업의 장점은 과거나 앞으로 다가올 미래와는 다를 수 있다. 지난 20년간 한국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낮은 엔지니어링 코스트였다. 제품을 설계하는 기술자들이 밤새 일하고 성과를 내려고 애쓴 결과 남보다 나은 물건을 낮은 가격으로 만들어낼 수 있었다. 결국 기술력, 즉 엔지니어링 맨 파워가 좋았기 때문에 지난 20~30년간 한국 기업과 경제가 발전했다. 지금도 한국이 내세울 만한 것은 기본 기술을 상용화하는 엔지니어링 능력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본다. -최근 중국, 인도가 부상하고 있지만 사실 글로벌 기업으로서 역량이 강화된 것은 선진국의 기업들이다. 한국 기업은 아직 로컬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글로벌화라는 관점에서는 한국이 대만 기업들에도 뒤지는 것이 현실이다. 쉬운 예로, 대만 기업인들은 명함에 영어 이름을 새겨 넣지만, 우리나라 명함에 영어 이름이 적힌 경우는 드물다. 게다가 우리 기업은 글로벌 기업들과 달리 해외 법인장에 현지인을 고용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삼성ㆍLG 등 대기업도 마찬가지다. 그만큼 ‘우리끼리’에 익숙하고, 외국인은 통제하기 어려운 불신의 대상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글로벌 기업이 되기 위해선 이런 인식을 깨뜨려야 한다. 그나마 일부 기업들은 사장이 한국인이면 부사장은 외국인을 두는 식으로 ‘시루떡 구조’를 갖추고 있는데, 해외에서는 가급적 현지인을 고용해서 회사를 현지화하는 것이 글로벌화의 지름길이다. 또 글로벌 기업이 되기 위한 기본 역량은 영어다. 영어를 못 하면 기술이 아무리 좋아도 마케팅이 안 돼서 물건을 팔지 못한다. -한국 기업들의 가장 부족한 점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한국은 철강, 조선, 정보기술(IT) 등 상업화와 대량생산에는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는 반면, 기반 기술이나 부품, 신소재 등의 연구는 뒤떨어진다. 세계 시장에 흩어진 요소를 종합하는 정보력, 연구개발(R&D) 등 화이트칼라 부문의 인력관리에도 약한 편이다. 다른 나라에 미치는 정치적 영향력과 세계 표준화를 주도하는 능력도 부족하다. 결국 한국 기업은 남이 시작한 일을 제품으로 만들어 수출하고 이익을 남기는 데 그칠 뿐, 스스로 산업을 주도하기에는 역량이 부족한 실정이다. 문제는 상업화에서 중국을 앞질렀던 간격이 점차 좁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글로벌화에서 한국기업이 지닌 장점들은 이제 중국도 할 수 있게 됐다. 이제는 다른 형태의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그것이 중국을 앞설 수 있는 우리의 경쟁력의 요체다. -미국, 일본, 독일 등은 곧바로 떠오르는 국가 및 기업 이미지가 있다. 한국적 특성으로 부각될 만한 가치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삼성이 두바이에 만든 초고층 건물,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반도체와 자동차 산업 등 중후장대ㆍ첨단산업에서 좋은 물건을 순식간에 만들어 내는 역동적인 이미지가 있다. 이른바 ‘다이내믹 코리아’의 이미지다. 역동적인 한국이라는 이미지를 살리고, 거기에 창의성을 보태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최근 들어서는 잠재성장률이 하락하고 기업가정신이 후퇴하는 등 역동성이 약화되고 있는 듯하다. ▦80년대 초반까지 산업화를 앞당기는 과정에서 민주화와 인권을 억눌렀다. 그 반작용으로 지난 20년간 한국은 민주화의 길을 걸어왔다. 이제는 누군가가 마무리를 해야 한다. 내 생각에는 노무현 정부가 민주화 시대의 마침표를 찍는 역할을 맡았다. 그래야만 앞으로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고성장을 할 수 있다. 지금껏 민주화 과정에서 국민들의 잠재적 욕구와 핍박받던 사람들의 감정은 어느 정도 사그러들기 시작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많은 숙제를 해소한 대통령으로 남을 것이다. 이제는 새 시대를 맞아 국가경쟁력을 높이자는 데 국민의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차기 대통령 후보들도 저마다 이 점을 내세우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차세대 리더는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과제로 삼아야 한다. 일하고 싶은 사람은 일하게 해 주고, 한국을 국제사회에서 존중받는 국가로 만들고, 국민의 요구에 부응해 선진국으로 끌어갈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차세대 리더가 경제를 알고, 세계를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글로벌 경험을 갖고 우리가 세계사회의 일원임을 이해하는 사람이어야만 민족주의, 민주화시대에도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 것이다. - 얼마 전 서울대 공대에서 신임 교수를 못 구해 사회 이슈화한 적이 있다. 해외에서 활동중인 인재를 국내로 유치하기 위한 방안이 있다면. ▦가령 서울대가 세계적인 석학을 교수로 영입하려면 서울대라는 이름만으로는 안 되고, 그들이 원하는 연구시설, 제반 생활여건, 근무 환경 등을 다 갖춰줘야 한다. 반면 기업은 우수인재 유치를 위해 사장이 몇 번씩 찾아가기도 하고, 일반 직원의 몇 배에 달하는 연봉과 특전을 제공하니 해외인재 유치가 가능해진다. 게다가 지금은 대학보다 오히려 기업 위상이 높아졌다. 그런 여건에서 대학이 고급 두뇌를 유치하려면 교육부가 우선 생각을 바꿔야 한다. 국민적 공감대와 국가적 지원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근본적으로는 해외 인재에게 무언가 성취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연봉은 부차적인 요인이다. 지금 시대에는 획기적인 자기발전의 기회가 과거에 비해 적은 것이 사실이지만, 한국에서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서 멋진 일을 해볼 수 있다는 기회가 있다고 설득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건희 회장이 5년뒤 신수종 사업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듯, 지금까지 한국 경제를 견인해 온 국내 제조업체의 미래에 대해 우려의 시각이 많다. ▦일본은 10년 불황의 과정에서 우리에게 많은 것을 빼앗겼지만 굳건하게 버티고 있다. 일본에는 아직도 세계시장의 80% 이상을 점유하는 부품산업이 수두룩하다. 우리가 앞으로 중국에 부품조립 등 많은 산업 부문을 빼앗기겠지만 그 와중에 얼마나 오랫동안 경쟁우위를 유지하고, 또 핵심부위를 얼마나 지켜낼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일부에서는 이제 제조업을 버리고 부가가치가 높은 서비스업에 주력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지만 잘못된 생각이다. 인건비 상승 등으로 제조업의 부가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과거 부가가치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신발산업과 같은 일부 제조업을 너무 빨리 버리고 중국 등에 넘겨 버렸는데, 지금은 신소재 등을 활용해 신발산업도 충분히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게 되지 않았나. 그와 같은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물론 금융을 비롯한 지식기반 서비스업은 1인당 부가가치가 제조업보다 훨씬 높고, 무엇보다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 필수적으로 육성해야 할 산업이다. 지식기반 산업에서 뒤떨어지면 끝내 개도국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장차 선진국에 진입하기 위해선 교육, 의료서비스, 금융 등이 모두 선진국 수준으로 올라서야 하며, 이를 위해 지금부터 서서히 시장을 개방해서 경쟁력을 높이고 미래의 경쟁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국제경쟁력이 가장 떨어지는 게 정부 분야인데. ▦싱가포르와 비교해 보자. 싱가포르 공무원은 영어가 유창하고 국제감각이 뛰어난 반면, 우리나라는 모두 ‘내수용’ 공무원이다. 국무위원을 뽑아도 국내용이지 해외용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공무원들이 구조적으로 창의성을 발휘할 수 없다는 점이다. 공무원 사회에서는 새로운 일을 시도했다가 잘못되면 승진이 안 된다. 잘해봐야 인센티브도 없으니 말썽 안 일으키는 것이 좋다는 식이 된다. 게다가 정부에는 일 하는 사람의 자율성을 얽어 매는 규제가 너무 많다. 가령 국회, 국정감사, 감사원 등 관리조직이 너무 많다. 그러니 불필요한 업무도 많아지고, 일의 효율성이 떨어진다. -마지막으로 선진한국 달성을 위해 한 말씀 부탁드린다. ▦우리나라는 선진국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전제 조건이 있다. 우선 사회적 갈등을 해소해야 한다. 기업과 정부, 정부 부처간, 기업간, 또 국민과 기업, 국민과 정부간에 서로 신뢰가 있어야 한다. 서로 믿지 못하기 때문에 자율에 맡기기보다 감독과 감시가 많아진다. 그렇게 모든 일을 관리하다 보면 효율과 창의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 진대제 前장관은
'IT강국 코리아' 신화의 주인공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을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한둘이 아니다. 삼성공화국을 우뚝 세운 '미스터 반도체' '정보기술(IT) 코리아' 신화의 주인공, 참여정부의 역대 최장수 장관 등이 모두 그를 지칭하는 말이다. '열정을 경영하라'는 그의 저서 제목처럼 진 전 장관이 걸어온 발자취는 우리나라 IT 산업 육성에 대한 열정으로 점철돼 있다. 지난 1952년 경상남도 의령에서 태어나 어려운 환경을 딛고 경기고와 서울대 전자공학과 등 국내 엘리트 코스를 밟은 그는 '국비유학생 1호'로 미국에 건너가 미 매사추세츠주립대 전자공학석사, 미 스탠퍼드대 전자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1983년 미 IBM 왓슨연구소 연구원으로 자리 잡았다. 세계적인 기업에서 능력을 인정 받던 와중에 '반도체로 일본을 누르겠다'는 일념으로 삼성전자의 스카우트 제의를 선뜻 받아들인 것은 유명한 일화. 이후 1999년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시스템LSI 대표이사, 2000년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 총괄 담당 대표이사 사장을 역임하며 삼성전자가 소니를 누르고 글로벌 일류기업으로 도약하는 데 기여했다. 참여정부가 들어선 2003년에는 정보통신부 장관으로 입각, 3년 동안 한국을 명실상부한 IT 강국으로 끌어올리는 데 주력했다. 장관직에서 물러난 지난해부터는 한국정보통신대 석좌교수로 있으면서 IT 전문 투자회사인 스카이레이크인큐베스트를 설립, 벤처투자 전문가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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