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출가스기준 세계최고…현실화 시급"2,000만원 짜리 레저용 차량(RV)을 구입한 사람은 유지비가 싼 경유차를 굴릴 수 있고, 1,000만원 남짓한 소형차 고객은 비싼 휘발유만 써야 한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정부의 경유 승용차 불허방침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정부가 세계 어느 업체도 달성이 불가능한 배출 가스 기준을 고집하는 바람에 고가 차량인 RV는 경유차가 허용된 반면 서민들이 애용하는 소형차는 내수 판매가 원천 봉쇄된 때문이다.
이 와중에 지난 8월 대기환경보전법 시행규칙이 개정되면서 다목적차에서 승용차로 분류된 기아의 RV 카렌스Ⅱ는 환경 단체의 반대로 내년 초 부터 국내 판매가 중단될 전망이다.
기아차 관계자는 "판매가 한 달만 중단되더라도 450억원 가량의 피해가 난다"고 밝혔다.
◆'경유차 논쟁' 왜 소모적인가
우선 국내 배출가스 규제가 비현실적이라는 점이 꼽힌다.
유럽연합(EU)의 현재 기준인 유로3은 물론 2005년 시행 예정인 유로4 보다 훨씬 높다.
이는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 향상에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산업 특성상 내수의 뒷받침 없이는 수출 경쟁력이나 기술력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에서 '경유차 허가 논쟁'에 에너지를 소비하는 동안 세계 시장은 폭발적인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환경 오염에 민감한 서유럽도 디젤 승용차 비중이 지난해 30%를 넘어섰고, 2005년 40%, 2010년 50%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시장이 형성단계인 미국도 2010년에는 20%까지 높아질 전망이다.
이에 따라 유럽 메이커에 비해 디젤 승용차 기술력이 뒤진 미국ㆍ일본 메이커들은 새로운 엔진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포드의 프로디지, 크라이슬러의 ESX3, 도요타의 야리스ㆍ코롤라, 닛산의 마이크라ㆍ프리메라 등이 대표적이 사례.
또 경유차를 불허할 경우 '교토 의정서' 발효 등 전세계적인 '환경 라운드'에 대응이 늦어지는 것도 문제다.
한국은 EU와 이산화탄소 감축 협약에 의해 한국산 서유럽 수출차 1대당 배출량을 99년 194g/㎞에서 2009년까지 140g/㎞으로 줄여야 한다.
국내 업계로서는 가솔린 승용차에 비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20~30% 적은 디젤승용차의 유럽 수출을 점차 늘려나가는 게 불가피하다.
미국ㆍEU가 '기술적 무역 장벽'이라며 USTR, 주한 EU상공회의소 등을 통해 국제 기준에 맞추라는 압력을 증가, 수출 주도의 한국 경제의 큰 짐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업계 관계자는 "이산화탄소ㆍ일산화탄소 감축에 유리한 경유차와 질소산화물ㆍ미세먼지가 적은 가솔린차가 고루 보급되도록 환경정책이 바뀔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허용 땐 경제적 효과 막대
업계에서는 디젤 승용차의 국내 판매를 허용할 경우 ▦규모의 경제 효과를 통한 가격경쟁력 확보 ▦커먼레일 엔진 장착 등 모델 다양화 ▦기술력 향상 등을 통해 2004~2007년 유럽 수출만 65만대(62억 달러 어치) 가량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부가가치 유발액 4조8,000억원, 관련산업 고용 유발 효과가 5만3,000명(자동차 산업은 2만3,000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현재 국내 석유류 수급 상황을 보면 휘발유는 대부분 국내에서 소비되고 경유 생산량의 40%는 수출한다.
경유차 허용은 이 같은 수급 불균형을 해소, 연간 3억2,000만달러의 원유 도입량을 줄일 수 있다. 또 열 효율성이 높은 디젤 엔진의 보급이 확대될 경우 에너지 절감 효과도 연간 1,35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이대엽 인하대 교수는 "디젤 엔진은 가솔린 엔진보다 효율이 높아 연비 개선과 이산화탄소(CO₂) 발생을 줄일 수 있다"며 "최근 유럽을 중심으로 판매가 증가하는 추세여서 더더욱 국내 시판 허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두 마리 토끼 잡아야
환경부는 경유차 배출가스 기준을 유로4에 맞춰 2005년부터 경유 승용차를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나, 환경단체 등의 반발에 밀려 눈치만 보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특정 업체나 단체의 시각이 아닌 국내 자동차 산업의 수출경쟁력 확보와 함께 환경 보호라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가령 일본은 지난해부터 기존 자동차 세제의 골격은 유지하면서도 저공해차ㆍ고연비차에 대해서는 자동차세를 50%까지 경감해 주는 반면 11년 이상의 디젤차 및 13년 이상의 가솔린차 등 오염이 심한 차량은 10%의 중과세를 매기고 있다.
또 독일ㆍ영국ㆍ프랑스 등도 이산화탄소 배출량에 따라 자동차세를 차등 부과하고 있다.
조철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디젤 차량 출시를 처음부터 원천봉쇄하면 업계의 친환경적 기술 노력도 벽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며 "연료전지 및 하이브리드 등 차세대 차량 대해서는 정부도 연구개발 투자 등 적극 지원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형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