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중국이 고도성장을 구가하고 있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중국 정부 특유의 유연성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사회주의 국가지만 외자 유치를 비롯한 경제 문제에 관한한 자본주의 시장경제 국가들을 뺨칠 정도로 세련된 정책과 테크닉을 구사하고 있다. 시장경제 경험이 훨씬 오랜 우리보다 기업을 비롯한 시장경제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정치적으로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먹고사는 문제에 대해서는 전체주의, 획일주의 함정에서 벗어나 방대하고 다양한 인적, 물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줄 아는 정책의 유연성이 힘의 원천인 셈이다. 과연 사회주의 국가가 맞나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이다.
유연성이 중국 고성장의 비밀
그들의 유연성은 가장 앞서가는 동부 해안 지역의 다양한 개발 패턴에서 잘 나타난다. 영국으로부터 돌려받은 홍콩을 자치도시로 유지함으로써 세계적인 금융 센터로 잘 키워가고 있는 가운데 ‘상하이 쇼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상하이를 동북아 물류 허브로 육성하는 데 성공을 거두고 있다. 이밖에도 칭다오ㆍ톈진을 비롯한 방대한 동부 해안 지역을 따라 다양한 형태의 기업도시와 산업단지들을 포진시켜 단번에 세계의 공장으로 올라서는 데 성공했다.
포르투갈로부터 반환받은 마카오의 눈부신 발전상은 유연한 개발전략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이다. 홍콩에 밀려 쇠퇴의 길을 걷고 있던 마카오는 미국 라스베이거스 자본을 유치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카지노산업과 유흥업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다. 주 5일 근무가 확산되고 있는 홍콩의 사람들과 중국의 신흥 부유층, 그리고 세계 각국의 관광객이 몰려들어 마카오는 지금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고 한다. 어찌 보면 사회주의 체질에 맞지 않을 것 같지만 마카오의 전통적인 이미지를 살려 관광특화도시로 만든 것이다. 실사구시의 마인드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우리나라도 동북아 허브를 국가 생존전략으로 삼은 지 꽤 오래됐다. 물류 허브, 금융 허브, 관광 허브와 같은 각종 청사진들이 경쟁적으로 펼쳐졌다. 그러나 중국처럼 눈에 확 들어오는 가시적인 성과는 별로 없어 보인다. 국제자유도시를 지향하는 제주도만 해도 관광객이 없어 울상이라는 소식이다.
일본을 비롯한 외국인 관광객들이 줄어들고 있는 가운데 해외 소비 바람이 불면서 국내인들조차 기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북아 물류 허브를 목표로 개발된 부산신항에는 들어오는 배가 없어 파리를 날리고 있다는 소식이다. 중국 상하이 등지를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몇 가지 사례에 불과하지만 여기에는 우리 경제의 어려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까짓 관광쯤이야 하고 무시해버릴 일도 아니다. 이미 경쟁력 약화에다 자동화 등으로 제조업의 일자리 창출 능력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일자리는 서비스 부문에서 나와야 하는데 그마저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 안되는데다 해외소비가 갈수록 늘다 보니 내수가 살아날 수가 없다. 해외 소비는 눈덩이처럼 늘어나는데도 국내 소비는 안하는 것은 국내가 기본적으로 비싸고 경쟁력이 없기 때문이다. 중국을 예로 들었지만 기업이든 개인이든 값싸고 다양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곳이 전세계에 널려 있는데 해외에 나가서 소비하는 것을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성장전략 패러다임 바꿔야
이쯤 되면 중국을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라고 대수롭지 않게 볼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보고 배워야 할 상대로 삼아야 할 것 같다. 제대로 된 기업도시 하나 못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무엇보다 그들의 유연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각지의 특성과 이점을 최대한 살려 금융 허브, 물류 허브에 이어 라스베이거스 뺨치는 관광 허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개발전략을 구사하는 중국은 벤치마킹 대상으로서 손색이 없어 보인다. 덩샤오핑(鄧小平)의 유명한 흑묘백묘(黑猫白猫)론이 중국 고도성장의 비밀인 셈이다.
경제가 어렵다는 우울한 진단이 잇따르고 있다. 해방 이후 무역 역조만도 2,680억달러에 이르는 일본도 그렇지만 경제 대국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줄달음치고 있는 중국을 이웃에 둔 우리는 미래를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