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칼럼] 기업 조세회피 정부책임

지난 주 미국 코네티컷 소재 장비 회사인 스탠리 웍스는 조세 회피를 위해 버뮤다에 법인 등록을 하려는 당초 계획을 연기했다.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편법으로 절세를 꾀하는 것이 비(非) 애국적 처사라는 비난이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사건의 전말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스탠리의 계획을 승인했던 주총 결정이 코네티컷 정부 관리들의 저항에 직면했던 것이다. 또 이 회사는 세금 관련 기사에 날카롭기로 소문난 뉴욕타임스의 데이비드 케이 존스톤의 요주의 대상 1호에 올라 있다. 그러나 자신의 정책에 반하는 사람들을 언제나 반(反) 애국주의자로 몰아버리는 부시 행정부가 스탠리 웍스에 대해선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조세 회피를 위해 국적을 바꾸는 회사가 급증하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해서도 별 언급이 없다. 편법으로 절세를 꾀하는 기업들을 비난하는 것 만으론 충분치 않다. 진정한 해결책은 탈세 가능성을 뿌리뽑는 것이다. 이상하게도 백악관은 여전히 조용하다. 도대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인가. 한 재무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미 정부는 현행 세법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며 "30년전에 제정된 현행법은 법인세율이 높아 미국 기업들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불행히도 당국은 핵심을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 기업들은 사실 외국 기업에 비해 세금을 더 내고 있지 않다. 오히려 독일의 법인세는 미국에 비해 현저히 높은 수준이며, 프랑스는 미국과 거의 같은 수준이다. 단 영국이 미국에 비해 조금 낮다. 어쨌든 재무부는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세 부담이 적은 곳으로 본부를 옮겨감에 따라, 혹은 시장 점유율이 감소함에 따라 세수가 줄어드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 같다. 정부의 이런 시각은 틀렸다. 사실은 이익을 내는 미국 기업들이 편법적으로 조세 회피를 하기 때문에 세수가 줄고 있는 것이다. 본사를 옮기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고도, 버뮤다에 법인 등록을 하는 것만으로도 미국 기업들은 해외 매출을 감출 수 있다. 또 다른 방법으로 기업들은 바바도스처럼 탈세에 대한 사법적 감시가 상대적으로 소홀한 곳에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어놓고 손실을 입은 것으로 조작하는 방법을 쓴다. 다시 말해 미국이 안고 있는 세수 감소는 탈세에 관한 문제지 경쟁력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해법은 조세 회피 기업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는 것이다. 기업들의 실제 매출을 정확히 파악하는 방법을 고안하거나, 탈세를 위한 장부 조작을 막으면 된다. 어렵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행정부가 의회의 반대를 뚫고 나갈 추진력이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행정부는 입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고 탈세를 묵인하는 등의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 초당파적 차원에서 의회 문제를 다루고 있는 더 힐(The Hill)지(誌)는 최근 행정부가 의회의 동의 없이 기업들이 수 십억 달러의 법인세를 감면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일련의 행정 명령을 내린 사실을 보도했다. 이제 스탠리 웍스 문제에 행정부가 왜 침묵하고 있는지 이해가 간다. 행정부는 자신이 조세 회피를 종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시인하고 싶지 않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행정부의 이 같은 묵시적 동의는 매우 위험한 게임이다. 왜냐하면 그 것은 곧바로 대규모의 세수 감소로 이어질 위험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회계사나 세무사들은 이미 행정부의 그런 암시를 눈치 채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은 탈세 조작이 안전하다고 믿고 있다. 올해 기업들이 제출한 세금 계산서 내역을 보면 경기 침체를 감안한다 해도 규모가 예상했던 것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다. 기업과 부유한 개인들이 적극적으로 조세 회피를 꾀한 결과로 보인다. 더욱이 내년엔 이런 현상이 더욱 악화될 듯하다. 탈세를 위해 편법으로 법인 등록을 하는 기업들이 이익을 얻고,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다는 것에 자긍심을 느끼는 기업들이 손해를 보는 이런 아이러니한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만약 행정부가 법인세를 없애길 원한다면, 열린 토론을 한번 해보고 싶다. 우선 심각한 재정적자 상황에서 그로 인한 세수 감소를 보전하는 대안을 가지고 있는가를 묻고 싶다. 아니라면 조세 회피에 대한 단속을 강화해야 한다. /폴 크루그먼 칼럼니스트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