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8월28일] 1차 통화조치

전쟁의 한복판에서 이승만 정권이 단안을 내렸다. 1950년 8월28일, 조선은행권을 폐지하고 한국은행권을 도입한다는 통화조치를 발표한 것. 이유는 두 가지. 돈이 떨어진 데다 부정지폐가 많았기 때문이다. 창립 13일 만에 6ㆍ25를 맞아 다급히 피난 온 한국은행이 보유한 미발행 화폐는 약 40억원. 전쟁을 치르기엔 턱없이 모자랐다. 서울을 점령한 북한의 경제 교란책동도 옛날 돈을 포기하도록 만들었다. 북한은 한국은행 창고에서 찾아낸 미발행 조선은행권을 유통시키고 탈취한 인쇄기로 돈을 찍어내 부산에 반입 시켰다. 경제를 흔들자는 의도다. 새 돈은 일본에서 찍어왔다. 인쇄시설을 모두 점령 당한 탓이다. 사정이 긴박해 디자인의 미술적 품위를 따질 겨를도 없었다. 주일대표부에 걸린 이승만 대통령의 초상화가 천원권에 실렸다. 백원권에 새겨진 광화문은 대표부 직원이 소장한 책자에서 찢어냈다. 조선은행권과 한국은행권의 교환비율은 1대1 등가교환. 1950년 9월부터 1953년 1월까지 모두 5차례에 걸쳐 719억원이 교환됐다. 교환대상의 93%가 돈을 바꿔갔다. 막대한 전쟁 비용을 대느라 신규공급은 더욱 많았다. 6ㆍ25 직전 558억원이던 화폐발행고가 1952년 말에는 1조114억원으로 늘어났다. 돈이 18배가 넘게 풀렸으니 물가상승은 당연지사. 1953년 2월 화폐가치를 100대1로 절하하는 2차 통화조치를 발동한 이유도 신규 화폐 발행 과다에 따른 인플레이션 탓이다. 당시 발행한 천원짜리 한국은행권은 요즘도 가장 흔한 고화폐로 꼽힌다. 거래가격 약 5만원. 한국의 통화조치는 모두 세차례. 1962년 3차 통화조치가 마지막이다. 오랫동안 변동이 없었기 때문일까. 화폐개혁 논의가 새삼 고개를 들고 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