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주주와 채권자

외환위기 이후 우리 경제가 겪고 있는 가장 큰 변화 가운데 하나로 기업의 주인은 주주라는 주주자본주의 패러다임이 확산되고 있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여전히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지 않은 가운데 오너와 종업원 중심의 이해관계자자본주의 색채가 강하게 남아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소액주주의 권리가 크게 신장되면서 이른바 미국식 주주자본주의로 이행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주주에게 왜 기업의 주인으로서의 자격과 기능을 줘야 하는가에 대한 논리적 근거는 대충 이렇다. 주주ㆍ경영진ㆍ종업원ㆍ채권자ㆍ소비자 등 기업의 모든 이해관계자들 중에서 자기 몫을 챙기는 데 있어서 주주가 맨 나중에 있는 손익계산서에 그 해답이 있다. 기업의 실적을 나타내는 손익계산서는 우선 전체 매출에서 가장 먼저 인건비와 원자재비 등 매출원가와 일반관리비부터 우선적으로 제하게 된다. 그 다음에 이자를 비롯한 영업외비용ㆍ기부금ㆍ세금 등의 순으로 제한 다음 이익이 남을 경우 주주의 몫인 배당이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총수입에서 인건비ㆍ원료비ㆍ차입금ㆍ이자, 심지어 세금까지 낸 후에야 주주 몫이 돌아가는 것이다. 기업의 성과를 분배하는 과정에서 주주는 정부보다 후순위에 있는 것이다. 우선순위에 따라 배분하고 남는 것이 없거나 손실이 발생한 경우 주주에게 돌아갈 몫은 없어지게 된다. 그러니까 주주들이 배당을 받으려면 이익을 내야 하고 이익을 내기 위해서는 기업의 효율성을 높이고 계속 발전시켜나가야 하는데 다양한 이해관계자 중에서 그 일을 가장 잘할 수 있는 적임자는 주주라는 것이 주주자본주의인 셈이다. 그러나 현실이 항상 논리정연하게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정상적으로 굴러가는 기업이라면 몰라도 규모가 크고 경제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는 대기업이 부실화되거나 부도가 났을 때 이 같은 원칙은 헝클어지거나 혼란에 빠지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과거 기아차나 대우차 처리과정에서 겪었듯이 노조를 비롯한 종업원의 목소리가 비록 일시적이나마 주주나 채권자의 권리를 압도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른바 국민정서나 정치적 고려 등에 의해 경제원칙이 흔들리는 경우도 적지않다. 가령 매각협상이 주주의 대의기관인 이사회의 거부로 무산된 하이닉스의 경우도 그렇다. 적어도 주주자본주의 원칙에 비춰 권리행사의 우선순위에서 채권단은 주주보다 앞선다. 채권자가 이자를 포함한 채권을 회수하기 위해 매각을 추진하는 것은 당연권리인 셈이다. 더구나 채권자가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가는 공적자금을 받은 은행이라면 채권을 회수해야 된다는 당위성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주주이익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이사회가 채권단의 결정을 거부하는 것 역시 잘못된 일이라고 할 수도 없다. 주주이익을 얼마나 보호할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주주자본주의에서 주주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이사회의 결정은 최대한 존중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부실기업 처리를 둘러싸고 채권자와 주주 사이에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이런 상황에서 해결책은 무엇인가. 법적으로 따진다면 대출을 출자전환해 채권자가 주주가 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이 경우 채권자는 주주로서의 권리행사를 통해 채권회수 방안을 강구할 수 있게 된다. 주주이익은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달성된다. 하나는 기업가치를 높여 주가를 올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업이 이익을 내 배당을 받는 것이다. 그 전제조건은 기업이 이익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의 이익창출 또는 정상화와 관련해 기업지배구조 논란이 주는 한가지 분명한 시사점은 주주든 채권자든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해 주인역할을 하는 주체가 분명해야 한다는 점이다. 막대한 부채를 안고 있는 부실기업 중에서 매각을 비롯한 부실처리가 지연되는 가운데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가 늘고 있다는 소식이다. 기업경영을 감시하는 지배구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다. 기업이 부실화되는 과정에서 주주는 무력해지고 채권단이 실질적인 주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막대한 공적자금을 받은 은행의 실질적인 주인은 정부이다. 주주자본주의에 근거한 기업지배구조가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는 셈이다. 무주공산인 상태에서도 기업이 잘된다면 기업지배구조와 같은 골치 아픈 문제를 놓고 고민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논설위원기자 document.write(ad_script1); ▲Top | | || |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