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우유전쟁:4(최명재의 인생도전)

◎88년 도쿄국제유업심포 연사 초청돼 도일/“진짜 우유는 양심과 도덕 문제” 설파 갈채파스퇴르의 「저온살균 우유가 진짜 우유」라는 선전과 이에 대한 기존 우유시장의 역선전이 소비자들을 상대로 한 일선의 판매시장에서 치열하게 전개되는 가운데 파스퇴르우유의 판매량은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싣고나간 우유의 대부분을 다시 싣고 돌아와 폐기처분하는 고통스러운 일이 반복됐으나 차츰 폐기처분하는 우유의 양은 줄어들었다. 처음에는 성진목장에서 자체 생산되는 약 4톤의 원유만 가지고 시판 우유를 만들었다. 그것도 다 팔지 못해 대부분의 아까운 우유를 폐기물로 처리해야 했으나 한 달이 지나자 성진목장에서 생산되는 원유를 다 소진하고도 횡성낙우회 소속의 인근 목장에서 원유를 갖다가 가공할 정도가 됐다. 비록 성진목장의 원유 외에 다른 목장의 원유를 조달할 정도로 성장(?)을 하기는 했으나 아직은 기존의 넓은 우유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무시해도 좋을 정도로 미미하기 짝이 없는 양이었다. 이처럼 생산과 판매량에 있어서는 파스퇴르 우유가 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보잘것 없는 수준이었으나 기존 시장을 위협하는 잠재적인 가능성은 예측 불가능할 정도로 폭발적인 요소를 품고 있었다. 이에 따라 기존 유가공업체들은 단순히 「중소기업 하나가 뛰어들었다」는 정도의 경계심이 아니라 「시장판도 전체를 위협하는 공동의 적」으로 인식, 민감하게 대응하고 있었다. 87년 9월 초순 첫 제품을 출하한 이후 반년이 지난 88년 2월, 최 회장은 도쿄에서 열리는 국제유업심포지엄에 초청을 받아 연사로 참석했다. 주최측이 한국의 수많은 유가공업체 대표들을 제쳐놓고 하필이면 이제 막 출범하여 기업의 생존 여부조차 불투명한 중소기업의 대표를 초청한 것일까. 이유는 간단했다. 일본에서는 수년동안 「진짜 우유」에 대한 공방전이 치열하게 전개돼 왔으나 입씨름에 그쳤을 뿐 「진짜 우유」를 상품으로 내놓아 성공한 사례가 없었다. 그랬는데 엉뚱하게도 「식품산업 후진국」인 한국에서 저온처리우유가 탄생하여 사활을 건 싸움을 하고 있으니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당사자를 불러 사정이나 들어 보자고 초청한 것이었다. 심포지엄에서 최 회장은 두 시간에 걸쳐 파스퇴르우유의 생산 과정을 설명했다. 이 연설에서 그는 저온처리우유의 기술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것은 자명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성진목장과 횡성낙우회 소속의 목장들이 원유의 질을 높이기 위하여 어떻게 노력하는 가를 슬라이드를 통하여 보여주며 상세하게 설명했다. 진짜우유를 만드느냐 아니냐 하는 것은 우유의 처리기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업자의 의지와 선택의 문제일 뿐이며 중요한 것은 얼마나 깨끗하고 품질 높은 원유를 사용하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는 점을 분명히 설파한 것이었다. 강연이 끝나자 수많은 질문들이 쏟아졌다. 이에 대한 최회장의 답변도 『진짜우유는 기술의 문제가 아닌 양심과 도덕의 문제』임을 분명히 했다. 일본 유업계는 그에게 갈채를 보냈고 자극을 받았다. 이후 수많은 일본의 유업계와 낙농업자들이 파스퇴르우유와 그 목장을 견학코스로 선정한 것도 그 때문이다. 최 회장은 일본에서의 강연 결과에 만족하여 그동안의 고생도 잠시 잊고 한껏 기분이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귀국길의 김포공항에서 기다리고 있는 소식은 이러한 그의 기분을 송두리째 뭉개버리는 것이었다.<이청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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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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