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월드컵은 전쟁이다
홍현종 hjhong@sed.co.kr
5,000명 사망자를 낸 국가간 전쟁의 원인이 기막히다. 축구, 월드컵 때문이다. 이 무모한 광기의 역사를 만들어낸 곳은 태생적으로 끓는 피를 주체하지 못하는 남미의 두 나라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다.
양국간 월드컵 예선 경기가 폭력으로 얼룩진 후 엘살바도르는 온두라스의 도시들을 전격 공습했다. 6일간 이어진 전면전 결과 가뜩이나 엉망이던 두 나라의 경제기반은 회복불능의 상태로 빠져버렸다. 미국의 우주선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한 시절인 지난 68년 여름의 일이다.
갈수록 더해가는 스포츠민족주의
축구에 목숨 거는 일은 모양새ㆍ양태만 슬쩍 바꿔 오늘로 이어지고 있다. 무력 대결이라는 무모하고 자기 파괴적 충돌만 없을 뿐이지 월드컵을 둘러싼 각국간 경쟁 구도는 구조적으로는 전쟁과 별 차이가 없다.
‘친구가 되는 시간’(Time to make friends). 20일 앞으로 다가온 독일월드컵이 내건 슬로건은 평화롭지만 승리를 향한 지구촌 각국의 행보는 말 그대로 전시(戰時) 체제다.
월드컵이 갈수록 전투화돼가는 현상은 기본적으로 스포츠라는 합법적 장을 통한 민족주의 경쟁이 그 원인이다. ‘전쟁은 무모한 짓’이라는 이성적 판단의 공백을 파고 드는 스포츠에는 그래서 국수적 경쟁 심리가 ‘보상적’으로 실리게 된다.
인간의 본성적 투쟁성을 가장 강하게 자극하는 스포츠가 축구라는 주장은 많은 이들로부터 제기된 바다. 사람들은 그런 축구를 통해 국민 국가 단위의 감정을 집단적으로 이입(移入)시키고 전쟁에서의 승리 같은 성취감을 경기결과로부터 맛보려 한다.
엄청난 유무형 재화의 움직임을 따라 실리를 좇는 것은 ‘월드컵=전쟁’이라는 도식의 더 큰 근거다. 석유 전쟁의 경우와 같다. 월드컵이라는 전장(戰場)에서 전리품으로 챙길 수 있는 경제ㆍ문화적 부가가치는 가히 천문학적이다.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한국이 거둔 경제적 이득이 무려 26조4,600억원에 달한다는 정부 통계가 그걸 입증한다. 경제의 직접 효과와 함께 독일이 이번 월드컵을 장기침체로부터 벗어나는 계기로 삼으려 함은 공표된 사실이다. 오는 2010년 월드컵 개최국 남아공화국의 경우도 국가 체질의 전면적 전환의 계기로 만들 계획을 추진 중이다.
월드컵이 가져다준 심리적 효과가 전쟁 승리에 버금감을 입증한 사례는 한국이다.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은 글로벌 체제 속 작은 국가로서 한국의 변방 의식을 털어낸 계기로서 의미가 컸다. 국가적 자존은 멋지게 업그레이드됐다. 붉은 악마, 길거리 응원에서 드러난 열정ㆍ조직력은 선진권 내 형편없는 갱 수준의 훌리건과 맞대비된 한가지 경이(驚異)적 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이번 월드컵은 한국 축구의 진정한 글로벌화의 계기라는 점에 그 뜻을 둘 수 있다. 홈 그라운드가 아닌 세계 축구 중심에서 주눅들지 않고 강호의 고수들과 어울리며 판을 함께 짜나가는 것, 그래서 그 장을 흠뻑 즐기고 경제ㆍ문화적 키를 훌쩍 키워야 할 장이다.
월드컵 경제학 새 해법 찾아야
지구촌을 달구는 데 맞상대가 없을 월드컵에 대한 조직적 대비는 4년마다 치러내야 할, 갈수록 치열해질 ‘공인된 전쟁’이기에 그 필요성이 더 절절해진다. 월드컵을 통한 경제ㆍ문화 자원의 재분배는 기존 경제학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새로운 패러다임적 형태, 그리고 그 속에는 인간사 모든 요소들이 섞여 그 해법을 복잡다단하게 만들고 있다.
월드컵은 눈앞의 이익만이 전부가 아닌 복합 패턴의 전쟁이다. 국가를 파멸로 모는 무모한 무력 대결과는 달리 문화ㆍ경제적 득실을 민감히 따져야 할 정교한 문명 전쟁이다. 국가 장래를 축구에 거는 나라들이 한둘이 아니며 축구 광풍은 남미와 아프리카 대륙을 넘어 육대주로 번져나가는 추세다. 스포츠로서보다는 오히려 산업의 한 분야로서 축구의 의미가 커지는 게 다가올 시대다.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 쿠베르탱 할아버지의 말처럼 월드컵을 고전적 스포츠 정신만으로 점잖게 그저 보고 즐기기에는 지금 각국간 이해는 너무도 첨예히, 그리고 역동적으로 얽혀 있는 상황이다. 월드컵 개전(開戰)의 휘슬은 이미 울렸다.
입력시간 : 2006/05/22 1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