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고가 마케팅의 함정

올부터 가시화된 국내 화장품 업계의 가장 큰 변화는 초고가 시장을 향한 적극적인 공세다. 몇 년간 잔뜩 움츠러들었던 업체들이 조금씩 불기 시작한 경기회복의 온풍을 살려가기 위한 전략으로 앞 다퉈 고가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 국산 범용 브랜드 중 고가 시장을 실질적으로 리드해왔던 태평양은 지난 97년 고가 브랜드 ‘설화수’를 론칭한 이후 처음으로 올해 스킨케어 라인을 증설하고 30만원대 제품을 내놓았다. LG생활건강도 60만원대 크림을 최근 선보이며 고가 시장을 향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한국화장품 역시 업체 제품 중 가장 고가인 한방화장품 브랜드 ‘산심’을 주력 브랜드로 삼고 배우 이미숙을 모델로 기용하는 등 바쁜 몸짓이다. 이 같은 고가 마케팅은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바람직할 뿐 아니라 실직적인 이익면에서도 도움을 준다. 고가 제품은 소수의 VIP 층만 아니라 자신이 원할 때에는 아낌없이 돈을 쓴다는 이른바 ‘가치소비’형까지 공략할 수 있다. 고급 브랜드의 이미지가 일단 구축되면 잠재 소비층까지 흡수할 수 있기 때문에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들이는 중간 가격대 브랜드를 유지하는 것보다 이익이라는 것이다. 외국 업체에 내어주고 있는 초고가 시장에 국산 브랜드가 뛰어드는 것 역시 국익 측면에서도 도움이 된다는 게 이들의 입장이다. 하지만 함정도 있다. 중가 브랜드 시장은 여지없이 무너진 것. 최저가 브랜드숍이 잇달아 들어선 대다 ‘거리 전문점’인 시판 시장의 약세가 지속되며 차츰 설 땅을 잃어갔고 그 결과 이름만 대면 알만한 중견 화장품 업체들까지 잇달아 위상을 잃어갔다. 물론 이는 비단 화장품 분야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생필품에 주력해온 LG생활건강의 생활용품 분야 역시 올 들어 ‘고가’ 전략으로 선회, 신제품 및 제품 리뉴얼에 적극 반영하기로 했다. LG패션 역시 ‘닥스’사의 1,000만원대 핸드백을 들여와 명동 닥스프라자 등지에서 판매 중이다. 하지만 ‘박리다매’형 최저가 제품이나 고가 제품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시장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오히려 이는 과장되고 어그러진 국내 소매 행태의 일면을 시사하는 일에 가깝다. 선뜻 화장품을 선물하는 일에 주저하게 되는 요즘 합리적인 가격대에 좋은 품질력을 갖춘 중가 브랜드의 약진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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