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바보 앨 고어

“영리한 사람은 자기를 세상에 잘 맞추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세상을 자기에 맞추려고 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세상은 이런 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직함으로 인하여 조금씩 나아진다.” 신영복 선생은 ‘바보 온달’ 설화의 교훈을 이렇게 풀이했다. 올해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미국 부통령이자 대통령 후보였던 앨 고어가 선정됐다. 지구 온난화를 비롯한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세계에 알리는 데 공헌했다는 이유였다. 환경문제에 대한 앨 고어의 관심은 오래된 것이다. 부통령으로 당선된 지난 92년 ‘위기의 지구’라는 책을 출간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고 교토의정서 창설을 통해 온실가스 배출 최소화에 앞장섰다. 자신이 후보로 나온 2000년 대선에서도 그는 환경문제를 주요한 이슈로 내걸었다. 당시 워싱턴의 정치전략가들(일명 ‘스핀닥터’)은 고어의 전략을 실패작으로 평가했다. 당장의 먹거리와 여가에 관심을 쏟고 있는 유권자들에게 환경문제로는 주목을 끌어낼 수 없다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고어는 낙선하고 말았다. (물론 미국의 독특한 제도 때문에 30만표 이상 앞서고도 선거인단 확보에서 진 것이다.) 결과를 놓고 말한다면 고어의 환경의제는 요즘 유행하는 말로 실패한 ‘프레임’이었다. 하지만 고어에게 환경문제는 선거전략 이전에 신념의 문제였다. 대통령에 떨어졌다고 환경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집권 이후 교토의정서를 반대하는 부시 행정부에 대해 고어는 지속적으로 비판했고 전세계를 대상으로 환경운동에 몰두했다. 그 결과 그가 출연한 영화 ‘불편한 진실’은 아카데미상을 받았고 이어서 노벨상 수상의 영광까지 얻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사실은 이번 미국 대선에서 환경문제가 최대의 이슈로 떠올랐다는 것이다. 환경문제를 도외시하던 공화당 후보들마저 앞다퉈 공약을 제시하기에 이르렀다. 7년 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정치는 현실’이라는 금언(金言)이 있다. 이것이 현실에 영합해야 한다는 뜻이라면 정치는 무가치한 일이다. 바람직한 미래를 현실화시켜야 한다는 의미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말 그대로 현실에서 그런 일은 드물게 일어난다. 꾀돌이들이 보기에 바보로만 여겨진 앨 고어의 우직한 활동이 세상을 바꿔 놓았다. ‘바보 앨 고어’가 세계인의 박수를 받는 상황은 정치에 종사하는 보람과 희망을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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