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발언대/11월 24일] 은메달의 이유있는 눈물

우리가 전후 복구작업이 한창이던 지난 1954년 인도 뉴델리에서 시작된 아시안게임이 16번째를 맞아 중국 광저우에서 우리 기술의 LED조명과 함께 화려한 개막식을 올렸다. 이번에는 "스릴 넘치는 게임과 조화로운 아시아"라는 슬로건하에 45개국 1만2,000여명의 선수단이 참가한 가운데 476개의 금메달을 놓고 각축을 벌이고 있다. 체력은 국력이라는 말도 있지만 국가의 사회 문화적 환경과 경제력에 따라 메달의 색깔과 숫자가 달라지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런데 국가에 따라서는 선수 정원만을 맞춰온 나라도 있고 야구방망이가 없어 빌려서 연습을 하면서도 행복한 선수들이 있지만 은메달ㆍ동메달을 따고도 하염없는 눈물로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하는 선수들이 우리에게 유난히 많다. 1,2위 간 실력 차가 박빙이라면 은메달의 이유 있는 눈물의 의미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미국 에이비스(AVIS)라는 렌터카 업체는 당당한 2위를 광고해 성공한 업체이다. "우리는 2위이기 때문에 더욱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광고카피로 적자회사를 흑자로 전환하고 성공의 반열에 올려 놓았다. 그렇지만 2위를 향한 우리의 태도는 꽤 이중적이다. 2003년 이승엽 선수가 56개의 홈런을 치며 아시아홈런 신기록을 수립할 때 2위 선수는 무려 53개를 쳤으나 대다수는 이름조차 기억해주지 못한다. 1등 하는 선수가 2등의 메리트까지 독차지한다는 마케팅이론 그대로다. 역시 매스컴에서도 2, 3위는 언급조차 매우 드물다. 스포츠는 논픽션인데다 승부가 분명해 관중들은 대리만족을 누린다. 그렇지만 '어차피 스포츠는 승부의 세계이고 세상이 다 그렇다'라는 생각은 조금 단순해 보인다. 소위 스타들은 우리가 보내주는 '인기'를 먹고 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1등만 기억해주는 이 더러운 세상"이라는 개그맨의 멘트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면서도 우리는 훌륭한 스타들이 한 번 슬럼프에 빠지면 금방 표정을 바꿀 만큼 엄격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은메달의 눈물은 지난 인고의 세월에 대한 회한의 눈물인 것이다. 또 훈련해야 한다는 압박감보다는 아직도 내가 부족하다는 깊은 자성과 겸손의 눈물이다. 그래서 지난 4년, 아니 긴 세월 동안 최정상을 향해 와신상담하고 인내하며 흘린 땀과 눈물을 인정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진정한 팬이라면 그 진정성과 도전정신에 갈채를 보낼 줄 알아야 한다. 더불어 곧 아시안게임이 끝나면 2위를 광고모델로 활용해보기를 권한다. 어차피 1위는 한 명뿐이라면 지금의 2위를 인정하면서 다함께 더 멀리 갈 수 있는 방법도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사회 일각에서는 유치원 재수생이란 말이 회자되고 있다. 분명히 1위는 훌륭하지만 2위가 있기에 1위가 화려한 것이다. 1위를 지향하는 행복한 2위가 많은 사회가 더 건강하다 할 것이다. 평생을 메달권 밖에서 살아온 나에게 메달의 색깔을 선택할 수 있는 영광스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외로운 금메달보다 2위지만 미래가 있어 행복한 은메달을 선택하고 싶다. 그 선택이 결국 내 행복의 부메랑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