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2차 세계대전후 50년만에 맞는 최대의 세계경제 파국에 대처, 새로운 국제경제 구조를 수립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도 신 브레튼우즈 체제를 건설할 것을 제안했고, 유럽과 일본은 목표환율제 등 국제 환율체계의 근본적 개혁을 주장했다.그러나 6개월이 지난 지금, 당시의 논의들이 빛을 바래고 있다. 한국을 비롯, 아시아 경제가 완연한 회복기에 접어들었고, 선진국 경제가 패닉 상태에서 헤어나 안정을 되찾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오는 6월 독일에서 열릴 G7 정상회담에서 새로운 국제금융질서 수립에 대한 의제가 피상적 수준에 그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런 역류의 분위기는 워싱턴에서 열린 선진 7개국(G7) 재무장관 회담과 국제통화기금(IMF) 총회에서도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 26일 열린 G7 회담에서 미국은 세계경제 회복을 위해 유럽과 일본의 경기부양을 촉구하는 선에서 그쳤다. 현재의 환율에 만족한다는 합의가 있었을 뿐 국제 환율체계 개혁에 대한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IMF의 성격에 대한 논의도 후퇴하고 있다. 6개월전에 미 재무부는 IMF를 「최후의 대출 은행」으로 규정, 금융위기에 대한 사전 지원을 약속했다. 그러나 지난 25일 열린 IMF 이사회는 긴급대출 항목 신설을 결의했을 뿐 자금 확보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지 못했다.
헤지 펀드에 대한 규제도 애매모호하다. 로버트 루빈 미 재무장관은 대통령 직속의 금융시장 실무그룹에서 헤지 펀드에 대한 규제안이 곧 나올 것이라고 시사했으나 자금운영의 투명성과 은행의 대출 조건 강화 등에 그칠 전망이다.
물론 미국은 아직도 세계 경제질서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클린턴 대통령도 낙관론자들의 자기 만족을 우려했으며, 루빈 장관도 『고통의 교훈이 머리 속에서 사라지고 있다』고 걱정했다.
그러나 신질서 수립의 결정권을 쥐고 있는 미국이 자기 만족에 빠져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루빈 장관은 G7 회담에 앞서 지난 21일 대출 은행의 책임 강화 펀드에 대한 대출 규제 등 5개항의 개혁안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뉴욕 타임스지는 미국의 제안이 세계경제 질서의 구조를 바꾸는 게 아니라 내부 치장을 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예일대의 제프리 가튼 교수는 『새로운 주장조차 낡은 사고와 다를 게 없다』며 『국제금융 체계가 정상화되면서 관심들이 발칸 반도에 가 있다』고 비판했다.
/뉴욕=김인영 특파원 INKIM@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