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수와 서열로 대변되는 검찰 조직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있다. 검찰 역사상 처음으로 재정경제부 등 정부 부처와 금융계 등 업계 출신의 경력 변호사 13명이 신규 검사에 임용돼 11일 임관식을 갖고 전국의 지방검찰청에 배치됐다. 경력 변호사가 검사에 임용된 것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04년 5명, 2005년 11명의 변호사가 공채를 거쳐 일선 검찰청에 배치된 바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선발 기준은 사법연수원 성적이라는 고답적인 잣대만 적용됐고 사정이 이렇다 보니 천편일률적으로 로펌이나 개업 변호사만 검사가 됐다. 법무부 검찰국의 권순범 검사는 “이번 공채는 성적 위주의 순혈주의를 지양하고 처음으로 각계 전문성, 경험 등을 기준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변호사를 채용했다”며 “이들이 경직된 기존 문화에 새로운 시각과 아이디어를 불어넣어 검찰 조직에 활력을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13명의 ‘신 인류’ 검사 중 검찰 역사상 처음인 업계 출신 검사와 정부 부처 출신의 검사 얘기를 들어본다. 업계 출신 정광일 검사 사법연수원 수료후 곧바로 증권업계로 발을 돌린 정광일(33ㆍ사시 41회) 검사는 지난 4년간 우리투자증권의 IB(Investment Banking) 파트에서 기업공개(IPO), 회사채 발행, 전환사채(CB) 및 BW(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 등 기업금융 실무를 쌓아온 금융 전문가다. 검사 일은 고된데 갈수록 명예는 떨어지고 있다며 잘 나가던 고위ㆍ중견 검사들이 줄줄이 법복을 벗어던지고 돈을 쫓아 변호사행을 택하고 있는 마당에 정 검사는 금융업계의 고액 연봉을 포기하고 박봉(?)의 공직을 택한 것이다. 정 검사는 “회사 이익을 위해 열심히 뛰는 것도 가치가 있지만 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나라를 위해 써보고 싶다”며 검사 입문의 포부를 밝혔다. 업계 출신인 정 검사는 이론이 아닌 실물 사정을 꿰뚫고 있어서인지 ‘경제 정의’를 강조했다. 그는 “많은 기업의 인수합병, 자금 조달에 관여하면서 기업 오너, 특히 중소기업의 대주주의 전횡을 목도했다”며 “이들 부도덕한 기업주들의 행태를 바로잡는데 도움이 되고싶다”고 말했다. 정 검사는 “검찰 안팎에서 특정 사건을 놓고 종종 경제정의보다 경제여건을 생각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이 같은 발상은 정의를 구현해야하는 검찰로서 적절치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좋은 예로 SK글로벌 분식회계 수사를 들었다. SK글로벌 수사 당시 기업활동을 위축시킨다는 비난이 많았지만 결국 SK그룹의 지배구조를 획기적으로 개선함으로써 기업가치를 올려놓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는 것. 그는 또 여론에 떠밀리는 수사를 지양하고 원칙과 소신에 따른 수사를 해보겠다고 다짐한다. 정 검사는 “민간인에서 공직, 그것도 남의 잘잘못을 가려야 하는 검사가 되고 보니 책임감과 사명감이 앞선다”고 말했다. 그는 이 같은 무게감을 느낀 탓인지 검사 공채 합격 소식을 듣고 가까운 주변 친인척에게 이 같은 자신의 뜻을 전하며 도움을 부탁했다고 한다. 정 검사는 법조계의 그릇된 행태에 대해서도 일침을 놓았다. 비리 판ㆍ검사가 법복을 벗고 버젓이 개업하거나 비리 변호사가 이렇다 할 제재 없이 타 지역에서 또 다시 변호사 활동을 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고 지적이다. 그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의정부 법조비리의 주인공인 이모 변호사가 사건이 잠잠해지자 또 다시 서울에서 개업을 했다는 얘기를 듣고 놀랐다”며 “비리 수준이 심각한 변호사나 판ㆍ검사는 법조계에서 영원히 추방하는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