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린 어페어지(誌)는 여름호 평론을 통해 현재 세상이 '단극(單極)'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지리정치학적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오늘날 국제 정계에는 북극점만이 유일하게 존재한다. 그리고 이 놀랍도록 일차원적인 지구의 역학 구조는 당분간 바뀌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다트머스대 정치학 교수인 스테판 G 브룩스와 윌리엄 C 월포스는 "오늘날 미국의 주도권은 가장 전형적인 단극 체제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며 "이제 남은 논란은 이 상태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또 미국의 외교 정책이 암시하는 바가 무엇인지 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과연 미국 외 국가들은 미국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고 있을까? 최근의 기록들을 한 번 살펴보자.
얼마 전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팔레스타인이 독립국가로서 미국의 지지를 받기 위해선 야세르 아라파트 자치수반을 축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말은 아랍세계를 무겁게 짓눌렀다. 누구에게 투표해야 할 지를 외부인들이 이래라저래라 한다면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여기에는 아라파트 수반의 비난세력들 조차 억압감을 느껴 오히려 아라파트 지지세력으로 돌아서는 결과가 초래됐다.
또 이와 비슷한 시기에 홍콩 소재 미 영사관은 특별행정지역 정부가 반(反)중국 세력인 해리 우를 영내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거센 비난을 퍼부었다. 홍콩은 지난 97년 중국으로 반환돼 중국 본토의 반(半)자치 구역으로 존립, 지난 1일에 5주년을 맞이했다.
사실 많은 아시아인들은 반(反)공산의 기수인 해리 우가 미국에게 쓸모있는 존재인데다, 미국에 소재한 그의 비영리 기구인 차이나 인포메이션 센터가 미 정부의 자금지원을 받고 있다는 미국측 입장에 동조할 것이다.
하지만 아시아인들은 이와 동시에, 홍콩 정부가 미국의 공개적인 비난 없이 극도로 민감한 사안을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도 생각을 같이 할 것이다. 미국의 이 같은 행동에는 홍콩내 해리 우 지지자들조차 몸서리를 쳤다.
비교적 덜 알려져 있는 일이긴 하지만, 지난 98년 앨 고어 당시 부통령이 말레이시아에게 가했던 질책을 돌이켜보자.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기구(APEC) 회담에 참석중이던 고어 부통령은 정적(政敵)을 잡아들인 마하티르 모하메드 총리가 투옥 과정에서 혐의를 날조했다는 가능성이 제기된데 대해, 그에 대한 부정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고어 부통령에 앞서 많은 아시아 지도자들 사이에서 마하티르 총리에 대한 비난 여론이 일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콸라룸푸르 한복판에서 말레이시아 총리를 비난한 것은 많은 이들에게 적절치 못하고 오만한 행동으로 비쳐졌다. 말레이시아의 의회 반대당 당수는 당시 "비록 진실을 말한 것이라고 해도, 외국의 지도자가 우리 땅 위에서 말레이시아의 민주적인 변화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은 국가적으로도 당혹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책임있는 국제적 리더십과 무절제한 권력의 오만 사이의 어느 지점에서 적절한 균형을 잡아야 할 것인가? 브룩스 교수와 워포스 교수는 "미국 정부가 무엇을 하던 몇몇 다른 나라들의 심기가 불편해지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라고 설명한다.
또 성공이 남의 시기를 유발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이 너무나 큰 지팡이를 휘두르고 있기 때문에, 더욱 부드럽게 말을 해야 할 뿐 아니라, 말이 필요없는 정치적 수완을 발휘해야 한다는 점도 인식해야 할 것이다.
그 선을 어떻게 조정해야 할 것인지는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사실 근래 미국 정부는 그 적정선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 어려운 여정도 외교의 첫 걸음마에서 시작된다. 다른 나라의 정치 지도자 선출에 간섭을 한다거나 외국 정부가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 내린 결정을 비난하는 것은 그릇된 방향으로 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현재의 미국처럼 강한 힘을 지니고 있을 때는, 옳은 일을 하면서도 일을 그르치기 쉽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LA타임스 신디케이트<톰 플레이트(UCLA 교수)>
정리=신경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