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생존 차원서 “적과의 동침”도 단행(중기 홀로서기)

◎경쟁사간 원가절감 위해 원자재 상호 거래/불량거래처 등 정보교환·시장 공동 공략도중소기업이 달라지고 있다. 무한경쟁시대를 맞아 중소기업들이 체질 강화를 통해 안팎에서 닥쳐오는 험난한 파고를 헤쳐 나가고 있다. 그들은 어떤 시련속에서도 결코 좌절하지 않고 강인한 의지와 끈기로 새로운 생존의 길을 찾아가고 있다. 사고업체로 몰려 금융기관의 갖가지 냉대를 떨쳐내고 회생에 성공한 기업, 공동투자가를 찾아 자금줄을 개척한 기업 등. 이처럼 오뚝이같은 정신으로 홀로 서기에 성공한 기업들을 우리 주변에서 흔치않게 찾아볼 수 있다. 본지는 신용보증기금의 협조를 받아 불황기에서도 경영 불안을 딛고 일어선 생생한 사례를 모아 중소기업들에 그 생존전략을 제시하는 기획물을 마련,내용을 소개한다.<편집자주> 「적과의 동침도 기꺼이 받아들인다.」 충남지역에서 조립식 패널을 생산하는 일진산업과 대전인슈, 다복 등 3개 업체는 연초까지만해도 치열한 경쟁관계에 놓여있었지만 지금은 원자재를 서로 공급받는 우호적인 관계로 탈바꿈했다. 그것은 이들이 경쟁자도 때로는 경영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경영철학을 남보다 앞서 깨닫고 공존의 방법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충남 금산에서 공장을 가동중인 대전인슈(대표 김춘구)와 다복(대표 김공작)은 그동안 주요 원자재인 스티로폴을 모두 경기·인천지역에서 구입해 사용해왔다. 금산 인근에서 스티로폴을 갖다쓸만한 마땅한 업체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굳이 먼 곳까지 찾아가야만 했다. 공장이나 사무실 등을 간편하게 지을때 사용되는 조립식 패널은 철판 사이에 스티로폴을 채워넣어 방열·방음효과를 내기 때문에 스티로폴은 없어서는 안될 필수 원자재다. 스티로폴은 부피가 워낙 커 운반비용이 많으며, 문제는 원하는 시기에 제때 공급받지 못하는 바람에 생산일정이 차질을 빚어 납품기일을 제대로 못맞추는 사태마저 심심찮게 발생한다는 점이다. 또 부피가 큰 물건을 비좁은 공장에 보관하기도 어려워 대부분 2∼3일전에 주문해서 그때그때 사용해왔다. 대전인슈의 김춘구사장은 『경기지역에서 새벽녁에 출발하면 상오 10시는 지나야 물건이 도착한다』면서 『가동시간에 맞춰 급하게 하역하느라 생산라인이 지체돼 손실을 입기도 했다』면서 그간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런 이들 업체가 지금은 근처 논산군의 일진산업과 연결되면서 언제라도 스티로폴을 불과 30∼40분만에 공급받고 있어 생산원가 절감은 물론 철저한 납기 준수가 가능하게 돼 경쟁력을 확보하게 된 셈이다. 일진산업의 경우 자체 스티로폴 생산설비를 갖추고 패널을 생산하고 있었지만 수요량이 많지않아 설비를 1백% 가동하지 못해 왔다. 그런 일진산업도 판매처를 늘리면서 매출 증대와 생산효율이 훨씬 높아지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올리게 됐다. 물론 이같은 합의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연간 매출액 60억∼80억원대 규모의 엇비슷한 경쟁업체끼리 남좋은 일을 하겠다고 나설리 없었기 때문이다. 평소 이들 3개 업체와 관계를 맺고있던 신용보증기금 대전서지점이 중매자의 역할을 기꺼이 맡았다. 대전서지점의 구용근대리는『이들 업체의 애로사항을 파악하고 처음 거래를 제의했을 때만해도 모두 같은 지역에서 경쟁하고 있다는 이유로 하나같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다. 그래서 몇차례의 설득과정을 거쳐 결국 지난 3월말 처음으로 사장들이 대전시내 음식점에서 모임을 갖게됐고 수급량을 감안해 정식으로 거래를 트기로 최종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권동현일진산업사장은 『처음 만났을 땐 서먹서먹했다. 겉으론 안보이는 경쟁심리가 밑바탕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서로간에 반대급부를 따지고 누가 더 이익을 챙길 수 있냐는 계산이 오갔다. 하지만 이왕이면 지역업체끼리 서로 공존공생하자는데서 어렵사리 의견을 모을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래서 일진산업은 지난 4월 다복에 처음 물량을 판매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매월 3백만원어치의 물량을 두 업체에 공급해오고 있다. 얼마전에는 대전인슈가 직접 거래를 주선, 일진산업만 생산하고 있던 대리석 모양의 패널 7백만원어치를 팔아주기도 했다. 여기에다 두달에 한번씩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사장들끼리 시장동향이나 불량거래처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는가 하면 각자의 경영기법이나 기술개발에 대한 나름대로의 노하우를 교환하고 있다. 또 동일한 거래처에 견적서를 같이 내면 서로 먼저 포기하려는 단계로까지 나아갔다. 3개사의 사장들은 요즘 관계를 한단계 발전시키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월간 수급량을 지금보다 두배이상 늘어난 7백만원대로 확대하는 등 보다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받고 싶기 때문이다. 『기업 경영이야말로 소리없는 전쟁입니다. 그러나 싸우면 이길 수 있어도 상처는 남는 것 아니겠습니까.』 권동현 사장이 남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얘기다.<정상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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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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