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이라크전 승리가 확실시되면서 국제 석유시장의 재편 작업이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미국이 국제사회의 반전 여론에도 불구, 전쟁을 감행한 배경의 하나가 이라크 유전 확보에 있는 만큼 이제는 무대 전면에 나서 석유수출국기구(OPEC) 중심의 기존 시장 체제를 바꿀 공산이 크다는 것. 특히 세계 경제에서 석유수급이 차지하는 중요도가 커지고 있어 석유시장의 재편은 세계 경제 구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유가 결정권, OPEC에서 미국 손으로=미국이 이번 전쟁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전리품은 단연 유가를 통제할 수 있는 힘이다.
이라크의 석유 매장량은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세계 2위 규모. 미국은 이라크의 석유를 증산해 국제 유가를 떨어뜨릴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미국이 유가를 떨어뜨리려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2001년 기준 미국의 석유 매장량은 220억 배럴로 10년 뒤면 미국의 석유 매장량은 고갈될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중동에서 더 많이 석유를 수입해야 한다는 얘기. 문제는 미국이 상당 부분 석유 수입을 의존하고 있는 사우디와의 관계가 미국의 친(親) 이스라엘 정책으로 악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것. 이에 따라 미국은 OPEC를 이끌면서 국제 유가를 조절하는 사우디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라크 유전 장악이 최선이라는 계산을 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일각에서는 미국의 유가 결정권 장악으로 OPEC의 기능이 사실상 붕괴될 가능성도 커졌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경우 국가 재정의 태반을 석유 수출에 의존하고 있는 OPEC 국가들의 국제 석유시장 영향력도
상당히 악화될 것으로 점쳐진다.
◇국제 경제에서 미국의 일방주의 강화될 듯=미국이 석유 시장의 주도권을 움켜 쥘 경우 비(非) OPEC권에서 가장 큰 타격을 받게 될 나라는 러시아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세계 경제의 침체에도 불구하고 유가 상승 덕분으로 고성장을 유지해 왔던 만큼 유가 하락은 러시아 경제에 치명적 악재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라크와 유전 개발 협상을 진행해 온 프랑스, 독일 등은 이라크 유전 개발권이라는 막대한 이권을 놓치게 되는 상황에 처해 있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을 반대하던 이들이 최근 미국에 대해 유화 제스처를 쓰고 있는 것도 이 때문. 이라크로부터 석유를 공급 받는 터키와 시리아 또한 미국이 이라크의 석유 자원을 장악하면 미국의 눈치를 살피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슬람권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해 온 두 나라가 모두 미국의 영향권 아래에 들어갈 공산이 크다는 것.
전문가들은 미국의 이라크 석유 자원 장악이 가시화되면 국제 경제에서 차지하는 미국의 비중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으며, 특히 이 같은 비중 확대는 미국의 일방적 패권 추구가 더욱 위력을 발휘하는 연결고리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운식기자 woolsey@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