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다른 주권 국가를 피고로 재판 못한다"
지난 2월21일 미국 연방 대법원은 한국ㆍ중국ㆍ대만ㆍ필리핀 등 4개국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위 ‘위안부(comfort women) 소송'의 심리여부를 놓고 논의를 벌인 끝에 심리할 수 없다고 결정, 이 소송이 사실상 종결됐다. 이에 따라 지난
2000년 9월18일 워싱턴DC 연방지방법원에 소송이 제기되면서 국제적인 관심을 끌었던 위안부 소송은 5년5개월여만에 끝났다.
미국 법원이 재판권을 행사하지 않기로 결정한 배경에는 각국 주권은 평등하므로 한 국가는 다른 국가의 법원에서 피고로 소송을 제기당할 수 없다는 ‘주권면제원칙(Sovereign Immunity Doctrine)’을 입법화한 FSIA(외국주권면제법: Foreign Immunity Act)에 근거하고 있다.
이 법에 따르면 누군가 외국을 상대로 미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경우 원칙적으로 미국 법원은 재판권을 행사하지 않는다. 다만 Section 1605(a-2)에는 “미국 이외의 곳에서 행해진 행위로서 미국 내에 직접적 영향을 주는 상업 행위”에 대해서는 예외적으로 미국 법원이 재판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위안부 소송에서 일본 정부는 독립된 주권을 가진 국가이므로 미국 법원에서 재판을 받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원고들은 위안소가 일본의 감독 하에 화대를 받고 영업행위를 한 매춘장소(소위 ‘공창지역’)였으므로 “미국 외에서 발생한 상업행위”로 보아야 하고, 위안소가 당시 미국의 영토였던 괌과 필리핀에 설치된 점을 들며 Section 1605(a-2)에 해당된다는 것을 강조했다. 미국 정부도 소송 이해당사자로서 원고들의 청구는 주권면제특권에 의해 배제되어야 하고,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 정치적 문제이므로 각하돼야 한다는 내용의 진술서를 제출했다. 이 소송에서 워싱턴DC 연방법원은 일본의 위안소 운영이 FSIA에서 말하는 상업행위로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미국의 FSIA와 같은 성문법은 존재하지 않고, 단지 대법원 판례(대법원
1998년 12월17일 선고, 사건번호 97다39216)만이 존재한다. 이에 따르면 “한 국가의 사법적 행위가 다른 국가의 재판권으로부터 면제된다는 것은 오늘날에 있어 국제법이나 국제 관례라고 할 수 없다”며 “따라서 외국의 사법적 행위에 대해 그 국가를 피고로 우리나라의 법원이 재판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할 것이다”라고 판시했다.
법무법인 바른 (Kim, Chang &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