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성장의 '숨은 공로자' 조용한 내조로 존경 한몸에
| 9일 별세한 하정임여사가 생전 구자경 LG 명예회장과 손을 잡고 단란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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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경 LG 명예회장의 부인이자 구본무 회장의 모친인 하정임 여사가 9일 오전6시39분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5세.
1924년 경남 진양군 대곡면 단목리의 하순봉ㆍ정회남씨 사이에서 3남3녀 중 장녀로 태어난 고(故) 하 여사는 만 18세 되던 해인 1942년 5월 이웃 지수면 승산리에 살던 구 명예회장과 부부의 연을 맺었다. 당시 혼사는 구 명예회장의 조부모가 선비 집안인 진양 하씨 가문의 장녀이자 한문에 뛰어난 소양을 갖춘 규수인 하 여사를 종부로 낙점해 이뤄졌다고 한다.
하 여사는 구 명예회장과의 슬하에 구 회장을 비롯해 구훤미씨,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구본준 LG상사 부회장, 구미정씨, 구본식 희성전자 사장 등 4남2녀를 두었다. 예의범절이 엄격한 집안에서 성장한 하 여사는 자식들이 형제 간의 우애와 근검절약 속에서 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데 힘썼다. 또 맏며느리로서 시부모와 8명의 시동생을 보살펴 ‘LG가의 종부’로 변함없는 존경을 받아왔다.
하 여사는 시가의 유교적 가풍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대가족의 집안 화목은 물론 구ㆍ허 양가의 화합에도 힘써 LG가 국내 굴지의 대기업으로 발전하는 데 숨은 기여를 해왔다. 남편이 기업인으로서 어려운 결단을 해야 하는 고비마다 이심전심으로 힘과 용기를 불어넣는 조용한 내조자였다.
하 여사가 혼인 이후 제사를 한번도 남에게 맡기지 않고 제수용품과 제례음식을 일일이 준비하는 등 ‘종부’로서의 역할과 소임을 다해온 일화는 유명하다. 구 명예회장과 66년간을 해로해오면서 평생 남편에게는 숨은 그림자로서, 자식들에게는 자상한 어머니로서 일생을 헌신해온 것.
이에 지난 2001년 구 명예회장은 희수(77회 생일) 축하모임에서 “지난 60년 동안 일생의 반려로서 묵묵히 내조해준 집사람에게 정말 고맙고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말해 각별한 부부애를 보인 바 있다.
구 회장은 평소 “엄격한 가르침과 따뜻한 사랑으로 자식을 바르게 키우는 부모의 모습을 ‘엄부자모’라 하는데 바로 아버님ㆍ어머님께서 그런 가정교육으로 우리 여섯 남매를 길러주셨다”고 말하곤 했다. 2002년 구 명예회장과 하 여사의 결혼 60주년을 기념하는 회혼례에서 구 회장은 “두분께서 백년을 해로하시는 부부상이야말로 평생 간직하며 본받아야 할 가장 소중한 유산”이라며 사랑과 존경의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재계는 하 여사의 각별한 부부애와 절제된 가족사랑이 LG가 발전하는 데 초석 역할을 했고 어려운 시기마다 버팀목이 됐다며 애도하는 분위기다. 하 여사의 별세 소식이 전해진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는 슬픔에 잠긴 채 장례 준비에 들어갔다. LG그룹은 이날 오후부터 서울대병원에 빈소를 차리고 조문객들을 맞았고 LG 직원들은 고인을 기리며 엄숙한 마음으로 업무에 임했다.
GS와 LS 등 범 LG가도 장례 일정에 맞춰 조문하며 삼성, 현대ㆍ기아차 등 다른 그룹들 역시 빈소를 찾을 예정이다.
발인은 12일 오전7시, 장지는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해월리다. (02)2072-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