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9월5일] 피르호


‘제발 전염병 좀 없애다오.’ 창궐하는 발진티푸스에 고민하던 프로이센 정부가 조사단을 구성, 대책 마련에 나섰다. 조사단이 1848년 내놓은 보고서의 골자는 개혁. 경제정책을 수정하고 정치적 자유를 허용하라는 내용이었다. 위생과 영양상태 개선 같은 처방을 기다리던 정부는 기겁했다. 보고서 작성자는 루돌프 피르호(Rudolf Virchow). 스물일곱살 먹은 의사였다. 가뜩이나 유럽 전역에 혁명 기운이 무르익던 시절 ‘불온한 보고서’에 놀란 프로이센 정부는 피르호 박사를 시골로 내쫓았다. 백혈병과 종양 규명 등 의학적 업적이 7년간의 유배시절에 나왔다. 베를린에 돌아온 직후인 1858년에는 ‘모든 세포는 세포로부터 나온다’는 내용을 담은 ‘세포병리학’을 저술, 질병 규명에 신기원을 열었다. 고고인류학에도 업적을 남겼다. 독일고고학회를 세워 이집트와 트로이 발굴에 참여하고 두개골 형태 연구를 통해 순수한 아리안족은 남아 있지 않다는 학설도 내놓았다. 국가를 세포로 해석한 점도 유명하다. 세포들의 공화국인 인간의 몸이 건강하다면 세포의 민주주의가 달성된 상태이며 질병은 세포민주주의의 파국이라는 것이다. ‘의학의 교황’이라는 별칭을 얻은 피르호는 현실정치에도 직접 몸담았다. 1861년부터 1893년까지 프로이센ㆍ독일제국 의회 의원을 지내며 군비축소, 복지예산 확대를 주장해 철혈정책을 추진하던 비스마르크에게 결투 신청을 받은 적도 있다. 1902년 9월5일 81세의 나이에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했지만 의학과 사회를 하나로 본 그의 사상은 오늘날 복지국가의 재정정책에 스며 있다. 선진국일수록 복지ㆍ건강에 돈을 많이 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복지예산 비중은 평균 51% 수준. 한국은 그 절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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