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쇳물의 恨에 묶이지 마라

[기자의 눈] 쇳물의 恨에 묶이지 마라 박태준 기자 june@sed.co.kr 지난 16일 충남 당진에서 열렸던 동부제강의 일관제철소 착공식 현장. 이날 행사 분위기는 동부그룹의 ‘맺혔던 한(恨)’을 푸는 잔칫집과도 같았다. 동부그룹의 한 고위관계자는 이날 “과거에 벼농사를 짓던 곳이 ‘쌀(열연강판)을 대줄 테니 당신들은 떡(냉연강판)을 만들어 팔라’ 했는데 요즘에는 ‘우리도 떡을 만들기 때문에 당신들에게 나눠줄 쌀이 별로 없다’고 냉대한다”며 “전기로 건설은 이제 우리도 벼농사를 지어 눈치 안보고 원자재를 조달하게 되는 것”이라며 감격했다. 21일 동국제강은 브라질에서 날아온 ‘고로 건설 추진’이라는 낭보를 전했다. “철광석을 녹여 만든 쇳물로는 고급 철강제품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이제 동국제강도 글로벌 일관 체계를 갖추게 됐다”고 전하는 동국제강 관계자의 목소리는 한껏 고무돼 있었다. ‘쇳물에 대한 한과 열망.’ 최근 잇따라 발표되는 국내 철강업체 사업계획의 배경은 이 한마디로 요약된다. 쇳물로 만든 열연강판이 있어야 자동차와 가전제품에 쓰이는 냉연강판을 만들 수 있는 철강 생산 공정상 철광석을 녹이는 고로 등 상부 생산라인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다소 ‘기형적’인 국내 철강업계는 쇳물로 만든 열연강판을 포스코 또는 수입산에만 의존하는 다수의 ‘단순압연회사’들로 구성돼 있다. 따라서 제품을 구매하는 고객이면서도 언제나 판매자의 눈치를 봐야 하는 ‘을’의 입장이었던 대다수 철강회사들은 오랜 시간 “할 말을 다하지 못한 채 한을 쌓아왔다”는 것이다. 그랬던 철강업체들이 이제 쇳물과 열연강판 생산이라는 숙원을 이루게 위해 첫발을 내디뎠다. 동부제강의 전기로에서는 오는 2009년 하반기 쇳물이 만들어지며 현대제철의 일관제철소와 동국제강의 브라질 고로 건설은 2011년 가동이 목표다. 이쯤에서 냉정하게 돌아보자. 철강사들의 한풀이도 좋지만 그것으로 그만이면 곤란하다. 국제 시장질서는 갈수록 원자재시장을 장악한 기업들이나 국가들의 눈짓 아래 줄을 서고 있다. 고로를 확보하는 것은 한풀이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고통을 극복해야 할 첫걸음이다. 크고 작은 난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현명함과 국내 기업 간의 적정한 균형감각이 앞으로는 더욱 요구된다. 파워게임의 강도가 갈수록 심화하는 세계 철강시장은 한국의 철강업체들에 지금부터 생존의 시험대를 거치도록 강요하고 있다. 50여년 한국의 산업사는 ‘한풀이’에 집착하다 스스로 자신의 무게에 짓눌려 스러진 기업들을 너무 많이 품고 있다. 입력시간 : 2007/11/22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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