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대기업 '상생경영 후유증' 속출

비싼 국내中企 부품 울며겨자먹기식 사용…사업 구조조정 마저 협력업체들 눈치보기<br>신규시장 진출·투자도 번번이 타이밍 놓쳐…"경쟁력 갉아먹는 고질병으로 작용" 비판도


“기존 납품처보다 20~30% 싼 중국산 부품이 있지만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국내 중소기업을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환율 하락과 고유가 등으로 원가 절감에 비상이 걸린 국내 한 대기업의 임원은 기자와 만나 이렇게 하소연했다.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이것저것 눈치를 보다 보니 정상적인 투자활동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재계 전체에 상생경영이 확산되면서 뜻하지 않은 후유증도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나름대로 만들어놓은 경쟁력 확보방안이 상생경영에 발목을 잡혀 투자 타이밍을 번번이 놓치는가 하면 사업 구조조정마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일부에서는 상생경영이 이제 단순한 스트레스 차원을 넘어 기업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고질병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비판마저 제기되고 있다. 대기업 입장에서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제때 사업 구조조정을 통한 경쟁력 확보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일부 대기업의 경우 해외시장에서 저가 제품에 밀려 고전하면서 중저가 제품을 줄이고 프리미엄 제품으로 전환해야 하지만 이마저도 쉽게 이뤄지기 힘든 실정이다. 자칫 잘못하면 국내 협력업체의 줄도산 등 적잖은 피해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전자업계의 한 고위임원은 “내부적으로 중국에서 중저가 제품의 생산라인 축소 및 철수 등을 결정하고 협력사 통보 절차만 남겨놓고 있다”며 “사회 전반적인 상생분위기 때문에 시기문제를 놓고 최종 고심 중”이라고 말했다. 해외 사업장도 상생 후유증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다. 일찌감치 중국 등 해외 생산기지를 확보한 국내 대기업은 중국 로컬 업체들이 빠르게 성장함에 따라 프리미엄 제품 생산으로 전략을 바꿔야 하지만 동반 진출한 국내 협력업체들의 부품 경쟁력이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 현지법인의 한 관계자는 “하드웨어 측면에서는 중국 부품업체들도 일정 수준 이상의 경쟁력을 확보했다”며 “동반 진출한 중소기업들도 원가ㆍ기술면에서 빠른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자생력을 가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최근 중국 등 국내 대기업의 전략시장에서는 자국 내 생산되는 부품을 일정 비율 이상 사용해야 한다는 규제도 도입되고 있어 대기업의 상생 고민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유행처럼 번지는 상생경영은 대기업들의 글로벌 부품 공급 체인망도 흔들어놓고 있다. 국내 디지털TV 업계는 최근 대만의 경쟁업체들이 핵심부품인 백라이트를 중국 업체로부터 국내보다 20~30% 싸게 공급받으면서 원가경쟁력뿐 아니라 시장점유율도 확대하고 있지만 강 건너 불 보듯이 지켜보고 있다. 원가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중국산 부품도 사용해야겠지만 이렇게 되면 이미 가격경쟁에서 밀린 국내 부품업체들이 도미노식으로 무너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신규 사업 진출 및 투자도 쉽지 않다는 게 대기업들의 푸념이다. 신규 사업 진출을 추진하다 일부 사업군이 중소기업 고유영역이라는 주장에 내부적으로 제동이 걸리는 경우도 속출하고 있다. B사의 한 관계자는 “일괄생산 체제만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해 사업을 추진하다 보니 중소기업이 영유하던 사업군도 포함됐지만 극히 미미한 수준”이라면서도 “내부적으로 상생경영에 위배되는 사업군에 대한 투자를 꺼려 일단 투자를 보류한 상태”라고 말했다. 재계와 시민단체 일각에서는 강요된 상생협력이 윈윈(win-win) 게임이 아니라 자선사업이나 봉사활동으로 전락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대ㆍ중소기업의 경쟁력 회복은 뒷전으로 밀리고 선심쓰기식이나 보여주기식으로 상생협력이 변질되고 있다는 것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환율 하락으로 원가 절감만이 시장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지만 지금은 국내 협력업체들을 위해 대기업이 일방적으로 희생해야 하는 분위기만 형성돼 있어 운신의 폭이 작다”며 “상생경영도 중요하지만 협력업체의 경쟁력도 담보할 수 있는 제도적인 틀을 마련하는 등 보완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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