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국산제품 있어도 값 싼 중국산 쓴다

■ 주력산업 국산화율 뒷걸음<br>조선 기자재 90% 국산화 됐지만 실제 사용비중은 69%<br>FTA 확대땐 글로벌아웃소싱 강화로 추락 가속화될수도

전세계 시장을 석권하는 우리 조선산업. 정부와 업계 등에서 추정하는 조선업의 기자재 국산화율은 85~90%에 이른다. 그러나 실제 국산화율은 지난 2003년 69.7%로 20%포인트가량 차이가 난다. 산업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글로벌 경쟁이 심화되면서 기업들이 생존을 위해 국산화된 제품이 있어도 좀더 값이 싼 중국산 등 수입 기자재를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때 우리 가전산업의 국산화율은 1980년 70.5%에서 1995년 76%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디지털 가전으로 이행하면서 국산화율은 2003년 71.7%로 뚝 떨어졌다. 국내 기술이 취약한 고급 핵심 부품인 디지털 칩, 디스플레이 등을 일본ㆍ대만 등지로부터 비싼 돈을 주고 들여오고 있기 때문이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본부장은 “원고(高), 글로벌 경쟁력 심화 속에서 자체 조달에 한계를 느낀 국내 글로벌 기업들이 협력업체 범위를 전세계로 넓혀나가고 있다”며 “하지만 국내 부품ㆍ소재 산업 경쟁력은 이를 못 따라가면서 저가는 중국, 고가는 일본 의존도가 더욱 심화된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수출과 국산화율 반비례=1990년 10대 산업의 평균 국산화율은 76.2%를 기록했다. 그 뒤 1995년에는 74%로 추락했으나 정부 지원 등에 따라 2000년에는 74.9%로 상승했다. 하지만 반짝 상승은 곧 마무리됐다. 2003년에 다시 73.9%로 떨어지면서 1995년보다 더 낮아졌다. 주목할 대목은 대다수 산업에서 수출집중도(총 산출액에서 수출 비중)가 높아지는 가운데 국산화율은 추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자동차 산업은 수출집중도가 2000년 28.6%에서 2003년 32.2%로 상승했다. 반면 국산화율은 89.1%에서 88.6%로 추락했다. 통신기기 파트도 수출집중도는 2000년 38.5%에서 2003년 64%로 3년 새 25%포인트 상승했지만 국내산 제품 사용 비중은 40%대 후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재정경제부의 한 관계자는 “일부 산업에서는 수출과 국산화율이 고르게 상승하고 있지만 대다수 주력 산업에는 최근 들어 반비례 관계가 형성되고 있다”며 “수출이 늘수록 국산화율은 오히려 떨어지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넓어진 글로벌 아웃소싱, 설 자리 잃어가는 한국=이 같은 원인에 대해 이경숙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글로벌 소싱 범위가 확대된 데 비해 국내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은 이를 뒤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 연구위원은 “일본은 그렇다 치더라도 최근 들어 중국이 가격경쟁력을 바탕으로 부품ㆍ소재를 중심으로 우리나라에 대한 수출을 늘리고 있는 것이 큰 요인”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한국의 중국에서의 수입 비중은 1992년에 4.5%에 불과했다. 하지만 올 상반기에는 17.6%로 13.1%포인트 상승했다. 수입품목도 과거 의류ㆍ식물성물질ㆍ시멘트 등 소비재ㆍ원자재에서 현재는 컴퓨터ㆍ철강판ㆍ반도체ㆍ평판디스플레이 등 부품ㆍ소재로 넓어지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올 1~7월 중국산 부품소재 수입은 173억달러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50억달러 늘었다. 문제는 이런 가운데 일본 등 기술강국으로부터의 수입도 줄어들 기미가 없다는 데 있다. 총 수입에서 일본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1992년 23.7%에서 올 상반기 16.3%로 줄기는 했다. 그러나 올들어 7월까지 대(對)일본 부품소재 무역수지는 98억달러 적자를 기록하는 등 규모를 키워가면서 전체 대일 무역수지 적자는 더욱 커지고 있다. 김동철 한국부품소재산업진흥원장은 “무섭게 추격해오는 중국과 첨단기술로 무장하고 꿈쩍 않는 일본 사이에 끼여 있는 샌드위치 신세”라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FTA 확대는 또 다른 글로벌 아웃소싱=국산화율 추락은 쉽게 볼 성질이 아니다. 경제의 큰 틀에서 볼 때 기업들의 자체 개발 능력을 더욱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 경제가 투자 등으로 창출해낼 수 있는 일자리 규모가 30만명에서 최근 들어 26만명으로 감소했다. 결국 국내 투자 부진은 일자리 감소, 잠재 성장률 추락, 소득 양극화 등 악순환으로 연결되기 마련이다. 한국 경제를 이끌고 있는 반도체 등 정보기술(IT) 산업의 고용유발계수가 한자릿수 이하로 떨어진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 중인 미국, 유럽연합(EU) 등과의 자유무역협정(FTA) 확대는 자칫 국산화율을 더욱 추락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도 문제다. 대일 무역적자는 감소하겠지만 글로벌 경쟁이 더욱 심화되는 가운데 관세율 인하 등으로 현재보다 더 싼값에 부품ㆍ소재를 수입할 수 있는 루트가 그만큼 열리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생존을 위해 같은 기술이면 더 싼 제품을 구입할 수밖에 없지만 국산화율 하락은 수출과 내수의 단절 등 우리 경제를 매우 기형적인 형태로 몰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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