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고 영리한 왕이 미치광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장생은 미친놈이 왕이라면 자신도 왕이라며 웃었다. “나는 미친놈이다. 줄타기가 좋고 광대짓이 좋은 미친놈. 나는 왕이다.” 장생은 이상하게도 왕이 두렵지 않았다. 왕을 비웃는 놀이를 하면 즐거웠다. 그 놀이를 보는 이들도 덩실덩실 춤을 추며 기꺼이 참여했다. 빙글빙글 세상이 돌아가고 그 속에서 웃는 공길을 보았다. 육갑ㆍ칠득ㆍ팔복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흥겨워 보였다. 왕을 가지고 놀면 속이 시원하고 흥이 저절로 났다.
광대가 왕을 비웃는 놀이를 한다는 소문을 듣고 왕이 그들을 불렀다. 내관 처선의 계략에 의해 불려온 계집 같은 사내에게 왕이 물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공길이라 하옵니다.” 연산은 자신처럼 작고 약한 그와 함께 있고 싶었다. “너는 나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 거지? 내게 보여줘. 내게 비굴하게 몸을 굽힐 것이냐, 나를 비웃을 것이냐, 내게 아양을 떨 테냐? 나를 웃게 하고 나를 만족시켜 보아라. 술을 주고 땅을 줄 테니.”
요즘 흥행에 성공한 왕의 남자라는 영화에 나오는 대사의 한 토막이다. 영화 속에서 공길이 인형이 줄타기하는 대목에서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온다. “아래를 보지마. 무서워. 줄 위라고 생각하면 안돼. 줄 위는 허공이야. 땅도 아니고 하늘도 아닌 반 허공.” 어름산이 인형이 줄타는 장면이다. 어름이란 줄타기 곡예로 얼음 위를 걷듯이 어렵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살판이라는 놀이도 있다. 잘하면 살판이요, 못하면 죽을 판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런데 살판 죽을 판 죽음의 경계를 넘고 뛰고 앉고 서고 얼쑤 신명이 나는 남사당패의 어름산이 공연을 그냥 즐겁고 흥겹기만 한 놀이로 끝내서야 될 것인가.
세상은 눈먼 사람이 외줄타기하듯이 험난하다. 엽전의 유혹, 여자가 눈웃음으로 하는 유혹, 권력으로 하는 유혹, 인터넷에서 악플을 달고 싶은 유혹, 유혹으로 가득찬 세상이다. 잠깐 한눈판 사이에 우리는 땅을 치면서 후회할 짓을 이미 저질러놓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임기 중에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던 사람이 임기가 끝나기 무섭게 수의를 입은 채 포토라인에 서는 경우를 숱하게 봐왔다. 몇 개월 뒤에 쇠고랑 찬 손목을 저고리로 덮은 채 포토라인에 서게 될 것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눈이 멀어서 볼 걸 못 보고, 잡놈이 마음을 훔쳐가는 것을 보지 못하고, 그 마음이 멀어져가는 것을 못 본 결과이다.
아무리 고위공무원을 역임했고 매일 텔레비전에 등장하면 뭘 하나. 대대손손 손가락질받고 욕먹을 사람이라면 성공한 사람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구경꾼들이 던져주는 엽전에 눈이 멀고, 광대가 노는 신명에 눈이 멀고, 땅투기, 자식 군면제, 위장 전입, 탈세, 보험료 체납의 유혹에 눈이 멀어 평생 존경받던 총장님이 이중인격자로, 민주운동가가 인권유린자로, 평화애호가가 평화방해자로, 가정적인 분이 방탕한 색한으로 밝혀져 창피를 당하고 꿈에도 그리던 감투는 물거품이 되는 사례를 우리는 눈만 뜨면 볼 수 있다.
진정으로 성공한 사람으로 평가받으려면 어름산이 같은 판단력을 갖춰야 한다. 판단력이야 말로 정말로 성공한 사람을 만드는 비결이다. 자식들에게 순간의 유혹 앞에서 눈멀지 않고 이익을 보고 과감히 물리칠 수 있는 판단력과 과단성을 가르쳐야 한다. 외줄타기 교육을 하자. 판단력 교육이야 말로 온갖 유혹이 판치는 밀레니엄시대에 자식을 살리고 가문의 명예를 지키는 교육이다. 왕을 가지고 놀아보자. 아니 왕이 될 사람을 가지고 놀아보자. 어름을 잘 타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