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업계에 인수합병(M&A) 움직임이 거세다.
최근 4~5년 사이 업체 난립으로 지난 2000년대 초반 고성장세가 주춤해지자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기 위한 업체간 다양한 짝짓기 시도가 일어나고 있는 것.
17일 업계에 따르면 LCD 부품칩설계 업체인 티엘아이가 지난 3일 LCD드라이브 구동칩 업체인 화인아이씨스를 흡수합병한다고 발표하는 등 지난해 하반기부터 팹리스 업체의 다른 분야 기업과의 제휴, M&A 등이 본격화되고 있다.
티엘아이는 이번 합병을 통해 화인아이씨스가 확보한 중국 TFT-LCD 모듈 메이커인 BOE-OT와의 전략적 파트너 관계를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사업 다각화는 물론 시장규모가 큰 LCD 드라이브 구동칩 사업을 통해 중국시장 진출 길을 튼 것. 회사 관계자는 "전체 매출의 90%수준인 국내 대기업의 매출 비중을 낮춰 사업 리스크를 덜게 됐다"고 말했다.
카메라폰에 들어가는 핵심칩을 만드는 코아로직은 최근 솔루션 전문업체인 엠큐브웍스를 인수했다.
엠큐브웍스는 PMP, 스마트폰 등 휴대폰 이외의 다른 어플리케이션 소프트웨어 경험이 많아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통합 멀티미디어 플랫폼을 제공하길 바라는 코아로직에게는 최적의 파트너일 수 있다는 평가다.
같은 사례로 넥스트리밍·씬멀티미디어·바로비전 등의 멀티미디어 솔루션업체들도 텔레칩스 등 멀티미디어칩 업체와 기술 교류 등 다양한 방식의 제휴를 추진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반도체 파운드리(전공정 위탁제조)와 팹리스 업체간 제휴도 눈에 뛴다.
지난 연말 파운드리 업체인 동부일렉트로닉스가 100억원을 투입, 토마토LSI를 자회사로 편입한 게 대표적이다.
파운드리업체로서는 반도체 위탁제조에서 벗어나 종합반도체회사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했고, 팹리스 업체는 제품을 설계한 후 이를 생산할 수 있는 일관생산라인을 갖게 됐다는 면에서 윈윈 전략이라는 설명이다.
코아로직 관계자는 "이제는 팹리스 산업도 어느덧 성숙 단계에 진입한 데다, 통합추세인 기술 트렌드와 점점 짧아지고 있는 제품 주기 싸이클을 감안하면 자체 내부 역량 강화로는 시장 대응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고객이나 사업영역을 넓혀 나가는 최고의 대안은 M&A"라고 지적했다.
토마토LSI 관계자도 "올해 팹리스 업계는 생존이 화두가 될 것"이라며 "팹리스 기업간 제품 공동개발이나 공동 마케팅 등의 다양한 시도가 나올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한편 국내 팹리스 업체는 현재 200여개사로, 연 매출 500억원 이상의 업체는 10여개사를 조금 웃도는 수준에 불과하다.